소감문
_윤혜숙_
교회가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부르심을 받은 선택 받은 백성으로 쓰임 받는 것과 같은 풍조로,
또 희미하게 이스라엘이 이방인을 시기하여 주께로 돌아올 것이다라고 확신 없는 얕은 지식으로만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희년으로 시작된 장로님의 강의와 매시간 열리는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뜻을 깨달으면서 기도하지 않을 수 없음을 깨닫게 되는 시간들이다.
그동안 나 자신도 모르는 사이 저 이스라엘을 교만하다고 정죄하면서 그들이 향하는 고난을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죄 값이라고 여기며 그 때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치는 군중 속에 내가
그 곳에 없었던 사실에 감사하며 안도했던 교만 하였던
모습을 회개한다. 하나님은 단 한번도 장자인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시고 흩으셨다가 다시 모으시는 긍휼을
베푸시는데 나는 그 뜻을 알지 못하고
선지자들의 예언을 글자들로만 읽은 것 같다. 주님은 유대인의 왕으로
오셨는데 나는 나의 왕 나의
주로만 영접했다.
유대인의 실패로 말미암아 이방인에게 복음이 넘어 온 사실을 하나님의 사랑으로 받지 못하고 저
이스라엘이
완악하고 교만했다고 손가락질 했었다.
그들의 실패가 우리 이방인들을 구원받을 수 있도록, 그들의
희생으로 인하여 저들을 아직도 수 많은
고통과 수모와 죽임을 당하고 2000년 동안 세계로 흩어져 고난의
길을 걷고 있는데 나는 알지 못하여
기도하지 못한 어리석음으로 죄를 지었다. 내가 존경하고 흠모했던
믿음의 선진들이 유대인들에게 보낸
저주스러운 이론에 오히려 동조했던 모습이 나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참감람나무인 이스라엘을 한번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돌감람나무인 이방인인 나 같은
자들을
접붙임으로 구원을 확장시켜 가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심에 감사한다. 복음에는
순서가 있었다. 갑자기가 아닌 하나님의 계획과 섭리안에 이스라엘이 복음에 거절하는 것이 결국은 하나
님의 뜻임을 알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혼미한 심령과 보지 못할 눈, 듣지
못하는 귀, 우둔한 머리를 주셨음을 알았다.
이스라엘은 온
인류의 구원의 희생양이 되었다는 사실은 조금도 생각하지 못하고 살았다. 이스라엘은
인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께서 남겨두신 마지막 카드가 될 것을, 이스라엘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은
나의 구원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것을, 이방인 스스로의 힘으로 구원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에 유대인을
통하여 구원 얻었듯이 이스라엘은
우리를 통하여 구원을 받을 것이다라는 것을, 현실의 이스라엘 회복 없이
역사의 완성이 없다는 사실은
충격 그 자체였다.
바울이 로마서 9장 3절에
자신이 저주를 받아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나의 형제, 곧 골육의
친척이 구원을 받을 수 있게
된다면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고 강력하게 동족 구원을 소망했던 그 애타는
마음을 이제는 알 듯 하다. 하나님께서
지구상에 모든 땅 중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소유권을 주장하신
땅이 이스라엘이요,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의
도성이 예루살렘임을 말씀 속에서 다시 보게 되었다.
하나님의 눈동자와 같은 땅에 이슬람 사원이 세워진 것을 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과 우리의
죄악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언젠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회복시키시고 그 곳에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을 세우실 것을
믿고
지속적으로 기도하며 하나님의 뜻이 성취 되어지길 기대해본다.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여” 바룩 하바 베쉠 아도나이, 마라나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