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감문 - IBS강좌를 마치고 - 박영소 먼저 귀한 강의를 준비해주신 IBS모든 스텝분들과 강사님들, 그리고 간사님들에게 감사를 표합니다. 하나님의 일을 하시는 분들이심을 마음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따스한 섬김을 늘 기억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언약신학”을 통해 성경전체의 맥을 정리한 목사입니다.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를 주제삼고 있음을 믿고 있고, 그 맥을 갖고 성경을 보고 있습니다. 그러던 와중, “이스라엘”의 성경적 위치에 대하여 고민하고 있던 차에, IBS를 통해(그리고 송만석 장로님의 책을 통해) 좋은 기회를 얻게 되었고, 귀한 성경해석의 눈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래에 몇가지 유익과 몇가지 아쉬운 점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1. IBS를 통해 얻게된 것들 1) 언약신학과 구속사의 눈으로 성경을 보면서, 풀리지 않았던 부분이 “유대적 해석”을 통하여 풀려졌습니다. 특별히 “희년법”을 통해 계시록을 보았던 부분은 정말 큰 도움이 되었으며, 송만석 장로님의 책 “지금은 이스라엘 시대”에서 “룻기”를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나오미와 룻이 유대인과 이방인으로 해석하는 부분은 신선할 뿐만아니라 앞으로 룻기 뿐 아니라 그것과 연관된 성경의 여러부분을 이 관점으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특히 구약과 절기 등을 해석할 때, 유대적관점으로 본 해석방법을 중요하게 찾아보려고 합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성혜경 목사님”의 지도와 주신 자료가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2) 선지서 안에 등장했던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언급을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선지서에 등장한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한 말씀을 의미적으로 영적으로만 바라보려 했는데, 그렇게 될 때 나타나는 현상은 “선지서가 분명해지지 않는다”는 것과 모호해지고 어려워져서 찾아 본 신학서적들이 나를 더 힘들게 하는 것을 경함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회복을 문자적으로 해석할 때, 오히려 분명해지는 것을 보고, 이 부분에 대하여 더 공부하고 싶은 마음이 생겼습니다. 3) 좋은 분들과의 만남이 있었습니다. IBS공부는 목회의 특성상 갖게 되는 “인간관계의 긴장”으로부터 나를 쉬게하는 시간이었습니다. 내가 섬기고 있는 성도들은 하나같이 좋은 분들이시지만, 아무래도 목양하는 입장에서 말과 행동을 조심할 수 밖에 없는데, 이 모임에서의 만남은 저에게 “긴장없는 만남”을 갖게 해주어서 쉼이 되고 휴식이 되었습니다. 특별히 인도해주신 목사님과의 만남, 함께 공부했던 분들과의 만남과 대화가 소중했습니다. 가장 감사한 것은 이 만남을 통해서 그동안 배우고 싶었던 “히브리어”를 다시 배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는 앞으로 계속하여 “선지서와 시편”을 히브리어로 읽고 그 원어적 의미를 깊이 이해하는 경지까지 가고 싶습니다. 2. IBS에게 바라고 싶은 것들 1) 기존의 신학과 더 친밀한 대화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송만석 장로님의 책 “지금은 이스라엘시대”를 읽으면서, 교회의 유대인박해의 역사를 처음으로 보았습니다. 유대인들이 왜 기독교인을 싫어하게 되는지에 대한 이해도 하게 되었습니다. 아마 많은 성도님들과 목사님들도 저와 같이 그 상황을 모르실 겁니다. 그리고 KIBI에서 주장하는 내용을 모르실 것입니다. 그 분들을 향하여 “이스라엘에 대하여 모르는 목사님들과 교회에 대하여 직간접적으로 폄하하는 발언”을 가끔 들을 때마나 마음이 편하지 않았습니다. 폄하하기보다 이해하고 대화하는 자세를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그 분들도 “진리에 더 가까이 가야할 우리의 형제요 자매”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들”도 폄하의 대상이거나 심지어 저주의 대상이 아니듯, 그 분들도 폄하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공부를 하면서 왕왕 폄하의 늬앙스가 담긴 말이나 단어를 쓰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예를들어 “대체신학”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그 예입니다. 수많은 시간동안 많은 경건한 그리스도인들이 나름대로 하나님을 뜻대로 신학을 해보고자 세웠던 “언약신학”과 “구속사적 신학”이 그 용어로 “진짜를 대체하는 신학”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신학자들은 “진짜가 아니라 대체하는 신학을 만드시는 분들”이 되었습니다. 물론 그 분들이 틀릴 수도 있겠지요. 그러나 많은 신학자들이 “이스라엘회복”을 주장하는 신학에 대하여 반론을 갖고 계시기도 하며 그 분들의 말에 많은 건강한 근거가 있기도 합니다. 저는 양측 다 “겸손한 태도를 갖고 서로 소통하고 대화함을 통해 각자의 신학을 더 정교하고 건강하게 만들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대체신학이란 용어보다는 그 분들이 사용하는 “성경신학” “언약신학” “하나님나라의 신학”등으로 부르면 어떨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이 공부를 통하여 어쩌면 “이스라엘회복”쪽으로 더 가까이 간듯합니다. 더 공부를 해야겠지만, 저 역시 늘 배우는 심정으로 겸손을 유지해야 하겠지요? 2) 성경본문자체를 더 공부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 공부를 통해서 새로운 정보를 알게되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 개인적으로 그 새로운 정보가 저를 설득시키지는 못했습니다. 오히려 성경본문을 더 깊게 보았으면, “이스라엘 회복”쪽에 더 가까이 갔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이 부분에 대하여는 여러 가지 책의 도움을 받아 성경본문을 더 깊이 공부해보려고 합니다. 감사의 인사
두서없이 수필을 써 내려가듯 소감문을 솔직하게 써 보았습니다. 아쉬운 부분도 있었지만, 전체적으로 저에게 유익했던 시간이었고, 새로운 생각이 생겨나고, 전혀몰랐던 새로운 신학의 장을 갖게되는 좋은 시간이었습니다. 저 역시 “역사적 전천년설”을 따르고 있고,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왕의 귀환을 준비하는 삶을 교회의 목적으로 삼고 있는 목사입니다. 같은 길을 가면서, 저보다 더 구체적으로 준비하는 KIBI를 축복합니다. 그리고 감사합니다. 귀 단체에 하나님의 능력과 도우심이 늘 끊이지 않고 부어지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