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팔레스타인 -. 팔레스타인에 대한 일반 자료 1) 정치 2) 경제 3) 문화 4) 교육 5) 사회 -.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해 1)팔레스타인의 현실 -. 팔레스타인 선교를 위한 자세 -. 팔레스타인 선교의 중요성과 방법 1) 선교의 중요성 2) 선교의 방법 a) 교육 선교 b) 문화 선교 c) 문서 선교 d) 현지인 양성 e) 치유 선교 -. 사역에 있어 주의해야 할 부분 -. 팔레스타인 선교의 전망과 한국교회의 역활
1) 팔레스타인 이들에 대해 한마디로 정의를 내리기 쉽지않다. 기독교인들에게는 아직도 하나님의 진노속에, 이스라엘과 대적관계에 있는 구약시대 블레셋 족속의 후손 정도로 이해가 되고 있다. 이들이 언제 정확히 이 땅에 정착을 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가 없고 일부는 에게 해 해안지방에서 이곳으로 흘러 들어온 것으로 알려졌고, 우리가 흔히 알고있는 블레셋의 후손이라고 단정 지어 말하기가 어렵다. 현재 이 땅에 살고있는 팔레스타인들은 주후70년 로마에 의해 예루살렘이 함락된 후 유대인들이 디아스포라가 되고, 비잔틴 시대의 기독교 문화권(지금 팔레스타인 중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초기 기독교 후손들이라고 알려진다). 그 후 638년 모슬렘에 의하여 점령된 후 이슬람 문화권에서 현재까지 주인이 여러 번 바뀌는 상황하에서 끈질기게 이 땅에서 살아온 이방민족 이다. 1948년 이스라엘 신생국가가 독립함 으로서 이천년간 뿌리를 내리고 살아온 조상의 땅에서 내몰리고 이 시대 비극의 주인공으로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여 지금 현재까지도 이땅의 소외된 민족으로서의 삶을 살아가고 있다. 1967년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지역(서안지역과 가자지구)의 점령은 이들의 삶을 더욱 어렵게 만들었고, 급기야는 1987년 말에 시작된 인티파다( 독립시위) 는 1993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에 평화 협정을 맺은 후 잠시 평화가 임하는 듯 했지만 2000년 8월 말 현 이스라엘 샤론 총리(당시 리쿠드 야당 당수)가 성전산을 방문함으로 촉발된 제 2차 인티파다로 양 측간의 다시 새로운 충돌이 시작 되어, 이 땅에 험악한 분위기를 연출하면서 많은 희생자를 만들었다. 이제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의 주권을 인정하고, 현재로서는 예측하기 어렵지만 양측이 평화에 대한 깊은 인식을 가지고, 이 땅에 평화를 정착 시키기 위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양측과 국제 사회의 노력이 진행 된다면, 불가능 하게만 보이는 중동 평화와 함께 현재 거론되고 있는 2005년에 어떤 형태로든 팔레스타인 독립 국가의 윤곽도 드러나게 될 것이고, 이제 여러 상황을 종합해 볼 때 지금이야말로 이 땅에 우리들의 관심을 집중시켜야 할 때가 되었다. -. 팔레스 타인에 대한 일반 자료 1) 정치 1947년 11월 유엔은 팔레스타인에 유대인과 아랍(팔레스타인) 두 민족을 위한 두 개의 나라를 세우기 위한 결의안을 통과 시켰는데, 당시의 인구 비례를 무시하고, 50대 50의 영토 분활은 다수를 차지하던 팔레스타인들이 받아 들이지 안은채, 48년 5월 14일 유대인들은 신생 독립국가를 선포한 반면, 팔레스타인들은 현재 까지 국가 없이 민족만 존재 한채로 이 땅에 살고 있다. 67년 6일 전쟁으로 이스라엘에 점령당한 이후로 팔레스타인은 그들의 방법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시도를 시작 하였다. 1974년 라밧 세미나 이루 팔레스타인은 팔레스타인 해방기구(PLO)"를 선포 했다. 80년 말기에 PLO는 레바논 밖으로도 진출을 했지만 고국에서는 정치적인 힘을 잃었고, 영향력을 상실했다. 1987년 12월 인티파다- 이스라엘로 부터 독립을 위한 시위로 지중해 지역 가자지구에 있는 자발리에 라는 난민촌에서 시작- 이후 PLO는 마비된 정치에서 소생했고 재기의 기회를 가지게 됐다. 인티파다 이후 점령지역에서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의 요구가 더욱 증가 했고 대조적으로 PLO 에대해서는 이스라엘과 서방 세계의 시선들이 많이 부드워 졌다. 이스라엘 정부는 팔레스타인들과 함께 평화의 조약과 함께 대화하는 것이 최선의 길임을 깨닫고.80년대 이스라엘 정부가 새로운 개혁안을 가지면서, 팔레스타인들과 비, 공식적으로 정치적인 문제들을 토론 하기 시작 하였고 양 측간의 거리들을 좁히기 시작하였다.팔레스타인들은 WEST BANK와 가자 지역과 함께 동 예루살렘을 수도로 인정하길 원하는 안건을 내놓기 시작을 하였고, 군사적인 전략대신 평화의 전략 에 대해 촛점을 맞추었다. 1986년 3월6일 죠지 부시 대통령과 국무장관 제임스 베이커는 4 가지안건을 발표하였는데 그것은 유엔 결의안 242조와 338조에 의하면 팔레스타인은 합법적인 나라로 인정했고 평화의 땅 이라고 공식적으로 승인하며 평화의 보증과 안전을 약속했다. 대부분의 나라들도 이 안건을 인정 했다. 이것은 팔레스타인의 오랜 기다림 끝에 얻어낸 해결책이었다. 1993년 8월 29일 오슬로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안 에 대해서 합의를 하였고, 아라파트 의장은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했고 두 나라의 공존과 평화를 추구하겠다고 합의를 하였다. 이 평화안은 5년동안 과도기적으로 팔레스타인 자치를 구성했는데 가자지구와 여리고에서 제한적으로 실시하고 그 다음으로 팔레스타인 자치 의회 구성(96년 2월 실시)과 요단강 서안 지구의 점령 지역으로 자치 확대 그리고 마지막으로 자치정부의 최종적인 확정과 동 예루살렘의 장래, 해외에 망명한 팔레스타인의 귀환문제, 국경확정, 점령지역내 유대인 정착촌 문제를 협상하였다. 아라파트 의장은 94년 중반에 고향으로 돌아왔고 94년 4월5일 카이로 에서 여리고 조약- 아라파트의 통치영역이 여리고와 가자에 한정- 을 맺었지만, 이것은 팔레스타인의 다음 단계로 이끌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95년 이스라엘 현대사에서 비극적인 사건인 라빈 수상의 암살로 이스라엘 극단주의 자들이 팔레스타인과의 평화를 결사적으로 반대한다는 입장을 표명하였고, 고 라빈 수상의 뒤를 이은 시몬 페레스 도 평화의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애를 썼다. 96년 총선에서 우익정당의 네타냐후 가 직접 선출로 수상이 된 후, 종전의 협상을 통한 평화 무드에서 힘을 위주로 하는 대립 관계로 전환 되면서, 사사건건 양측이 부닥치는 사이가 되었다, 98년 미국은 98년 와이 리버 협상을 통해 고사직전의 중동 평화를 기사 회생 시켰지만, 네타냐후 정권의 한계로 인해 합의 내용들을 이행하지 못하고 여론에 의해 신임을 묻는 조기총선으로 야당이던 노동당의 예후드 바락 이 58.5%로 신승을 하게 되었다. 팔레스타인은 99년 5월4일을 독립 선포하려 했지만 여러 주변의 상황으로 연기를 하였고, 2000년 9월 14일 독립 선포도 예정 대로 되지 못했고, 2000년 9월 부터 시작된 제 2차 인티파다로 인해 양 측간의 평화 협상은 회생 불능의 상태로 빠지면서 서로간에 감정의 골이 깊어지고, 2001년 초 우파 야당 당수인 샤론이 총리에 당선 됨으로서 협상 보다는 서로 힘으로 문제를 자기 중심적으로 해결 하려고 있기 때문에 현 재 상항 으로서는 양 측간의 타협의 여지가 별로 많아 보이지 안고, 이번 이스라엘 총선에서도 현 샤론 총리가 재선됨으로서 현재의 정국 구도가 계속 심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2) 경제 팔레스타인 경제는 이스라엘의 경제에 종속된 구조를 가지고 있다. 67년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점령한후 사회간접시설에 대한 투자가 거의 이뤄지지 못한 상태에서, 번번한 산업시설이 없다. 대분분의 공장들은 영세성을 벗어나지 못하고 가족 체제 중심으로 운영이 되고 있다. 이스라엘과의 평화 협정이후, 산업시설에 대한 투자 계획을 세우고 의욕적으로 추진하고 있지만, 자체적인 자본의 부족으로 외부의 원조를 통한 경제 회생을 바라는 실정이다. 가자에 국제 공항이 들어섰고, 가자 항구가 완성 되면 지금보다 국제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짐으로 팔레스타인 경제 성장에 커다란 몫을 하게 될 것로 기대 하였는데 현재 양 측간의 충돌로 대부분의 시설들이 파괴되어 팔레스타인 경제에 별 도움을 주지 못하고 있고 언제 자체 공항과 항구 시설들을 통해 활발한 경제 활동이 시작 될지 현재 로서는 아무도 장담을 할 수가 없는 실정이다.. 현재 대부분의 팔레스타인들은 이스라엘쪽에 가서 노동력을 제공한 댓가로 생활을 꾸려가고 있다. G.N.P.는 서안지구가 1200불, 가자지구가 600불 정도 이고(이스라엘 15000불 ), 실업률은 서안지구 11.1% 가자지구 40.4%이다. - 98년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통계청 자료- 하지만 현재 팔레스타인 경제 상황은 3년 전에 비해 대단히 악화 되어진 상태이다.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지역을 봉쇄하여 통행과 출입에 제한을 받고 있고, 더욱이 이스라엘 지역에 나가 일 할 수 있는 통행증 발급을 어렵게 하여 노동을 통한 생활도 힘들어 졌고, 순례객을 통한 관광 수입도 거의 끊긴 상태에서 다른 팔레스타인 지역과 함께 베들레헴 지역의 실업율은 70%를 넘어서는 그야말로 경제가 붕괴된 상황에서 하루 하루를 구호의 손길에 의지해 연명해 가고 있는 실정이다. 특히나 어려운 경제로 인해 소수의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이 조국을 등지고 외국으로 빠져 나가고 있는데 베들레헴 지역에서만도 지난 2년간 약 1200명 정도가 고향을 떠났고, 계속해서 기회만 된다면 이곳을 나갈려고 하는 기독교인들의 수는 늘어가고 있는 실정인데, 이런 상태가 계속된다면 예수님이 태어나신 베들레헴은 명목상의 기독교 도시화 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 없는 실정이다. 3)문화 언어는 공식적으로 아랍어를 쓰지만 많은 사람들은 특별히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다른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 영어는 학교에서 가르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영어를 할 수 있다. 불어, 독어, 러시아어, 히브리어. 스페인어들을 사용 하지만 영어 보다는 일반적이지 못하다. 팔레스타인 도시인들은 외국 방문객에 익숙해져 있으며, 마을과 난민촌 사람들은 더욱 호기심이 많고 보수적이지만, 친절 한 편이다. 팔레스타인은 모슬렘이 우세하고(인구의 98%), 사회는 현대적인 물결과 중심 도시에서 자유의 물결이, 특히 서안지구의 동 예루살렘. 라말라. 베들레헴에서 일어나고 있지만, 아직도 남성 위주로 움직이며, 모슬렘 종교의 영향하에 있다. 여성들의 전통복장은 "톱(Thoub)" 이라고 부르는데 옷이 길며 가로질러 수를 놓는다. 지역마다 마을을 대표하는 디자인이 다르다. 남자들은 "데마야(Demaiah)" 라고 불리우는 옷을 입는데 옷은 길지만 수를 놓지 않는다. 그리고 "쿠피아(Kufiah)" 와 "핫다(Hata)"는 머리에 쓰는 것으로서 흰색이나 검은 색을 섞어서 짜거나 흰색만으로도 사용한다. 팔레스타인의 전통복장은 오늘날 쇠퇴하였고 조그만 소도시에서, 또는 나이드신 분들이 많이 입는다. 음식은 비교적 싼 편이며 대부분 야채와 빵과 밥으로 이루어져 있다. 펠라펠(Falafel). 호모스(Humus), 풀(Fool), 슈와르마(Shwarma), 케밥(Kebab) 등이 있고, 1불에서 5불 정도 이다. 주요 전통 음식은 케밥인데 양고기나 소고기로 만든다. 4)교육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이전의 교육 체계는 이집트와 요르단 관리아래 초등 교육 수준의 교육과 처음 9년간은 의무적인 교육과 공립학교를 세웠다. 오늘날 3개의 교육 시스템이 있는데 국제난민기구에서 세운 학교와 공립학교, 그리고 국제적인 종교, 자선단체들이 세운 사립학교 이다.. 통계에 따르면 공립학교는 2/3의 학생을, 국제난민기구가 세운 학교는 1/4의 학생을, 사립학교 들은 1/10의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25%의 아이들만이 초등학교를 다니고 있으며, 조기교육은 인티파다의 영향이래 교육자들과 사립학교, 국제난민기구 학교 관계자들이 향상된 가르침과 보충, 보완적인 교육 시스템, 새롭게 정리된 학교 시설, 몇몇의 문제점들을 고칠 필요를 인정 하고, 프로그램 개발과 교육 발달 프로젝트를 시행 중이다. 대학교육은 베들레헴대학, 알 나자국립대학(나불르스), 헤브론대학, 비르제이트(라말라), 가자의 이슬람대학과 아자르대학, 알 쿠드(예루살렘) 대학교가 있다.인구의 비례하여 중등 교육이상을 받는 사람이 적다. 대체로 20%정도가 중등교육을 받고 있다. 문맹율 15.7% (남8.5%, 여 33%) 현재 계속되고 있는 인티파다로 인해 팔레스타인 지역은 이스라엘군에 의해 자주 봉쇄를 당하고 있는 관계로 대부분의 학교들이 자주 문을 닫아 정상적인 수업을 하지 못하고 있는 등 팔레스타인 지역의 학생들의 수업량이 절대 부족한 상태에서 이러한 상황이 앞으로도 계속된 다면 미래의 주역이 되어야할 다음 세대들에게 치명적인 교육 결손은 이 땅에 커다란 재앙으로 다가올 수 도 있음을 현 기성 세대들은 주목을 해야하고, 자라나는 세대들을 위한 교육에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5)사회 팔레스타인 사회는 이슬람종교가 삶을 지배하는 사회 구조이다. 전 인구의 98%가 모슬렘이고, 사회의 모든 시스템들이 이슬람종교의 영향하에 움직이고 있다. 소수의 기독교인들이 있지만, 다수의 힘에 위해 여러 면에 불 이익을 감수 하며 살아가고 있다. 초기 기독교 전통을 가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은 오토만 제국(1517-1917)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계속 줄어들고 소수 집단으로 남아있다. 48년 이스라엘 독립이후 계속되어진 전쟁과 정치적인 박해, 경제적인 문제들이 이들로 하여금 고향을 등지고 세계로 디아스포라 하게 만들었다.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소수로 전락한 기독교인들의 위치는 항상 불안한 상태로 외부로부터는 부정적인 이미지의 팔레스타인으로 보이고, 내부적으로는 같은 동족인 회교도들로부터 이방인 취급을 당하는 등 안팎으로 곱사등이 되어 있는 형국이다. 팔레스타인 사회는 전통적으로 남성 위주이며 여자들은 아직도 남자의 부속품 정도로 여겨지고 있으며, 드러나보이지 안지만, 많은 부분에서 여성들의 인권이 심각하게 침해를 당하고 있다. 가족 내에서도 여자들의 지위는 단지 집안을 지키거나, 남자들에 의하여 삶이 좌지우지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자가 혼자 있는 집에 남자가 혼자 들어갈 수 없다. -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해 사실 팔레스타인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머리에 핫다(아랍인들이 머리에 두르는 수건)를 두르고 과격하게 테러를 일삼는 테러 집단으로 모든 세계인들에게 골치 아픈 존재로 인식되어 있는 현실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서로 원수지간 으로 죽고 죽이며 도저히 불가능하게 보이던 유대인과 팔레스타인간에 서로의 생존권을 인정하고 두 민족간에 평화를 위한 93년의 평화 협정이후 팔레스타인들의 실체들이 조금씩 세계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하고 있지만 아직도 극히 단편적인 면들만이 소개 되는 등 이들의 진실한 삶의 모습과 처한 상황에 대한 인식과 이해는 거의 없이 일방적인 언론의 편파적인 보도로 말미암아 여러 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특히 선교적인 차원에서 이러한 부정적인 이미지로 말미암아 선교지로서 기피를 당하고 관심밖에 있는 것이 현재 팔레스타인 선교의 현실이다. 1) 팔레스타인의 현실 단순한 접근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형편이기에 대락 4가지 측면에서 설명을 하고자 한다. 첫번째 정치적으로 냉전체제의 종식과 걸프전에 따른 국제적으로 새로운 질서가 중동지역에 필요하게 되었고, 이에 따라 이스라엘과 주변 아랍국가 들간에 서로의 필요에 따라 관계개선을 원하게 되었다. 그런데 먼저 선행 되어져야 만할 문제가 있었는데 중동문제의 핵이라 할 수 있는 팔레스타인 문제였다. 주변의 아랍국가 들의 주장은 선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후 이스라엘의 관계개선 이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내부문제(구 소련에서 몰려온 유대인들로 인한 경제문제, 두 민족간의 잦은 유혈사태, P.L.O.의 재정적인 어려움등)도 두 민족인 지금까지의 적대 관계에서 상호공존을 위한 방법을 모색하지 않을수 없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두 민족은 93년 8월 29일 오슬로에서 팔레스타인 자치안에 합의를 하였고, 팔레스타인 아라파트 당시 의장은 이스라엘의 주권을 인정하고 두 민족의 공존과 평화를 추구 하겠다고 천명을 하였다. 이 평화안은 5년 동안 과도기적으로 팔레스타인 자치 의회 구성(96년2월 실시)과 요단강 서안지구의 점령지역으로 자치 확대 그리고 마지막 3단계는 자치정부의 최종적 성격 확정과 동 예루살렘의 장래, 해외에 망명한 팔레스타인의 귀한 문제, 국경확정, 점령지역내 유대인 정착촌 문제를 협상하기로 하여 이중 두 번째 단계까지 실시되었다, 하지만 계속되는 양측간의 유혈충돌은 힘들게 진행 되던 중동 평화에 찬물을 끼 얹었고, 급기야는 서로가 싸인을 했던 평화 협상 조차 백지화될 상황 속에 현재의 상황은 극한의 대립으로 가고 있는 안타까운 실정이다 그럼에도 희망을 가지는 것은 그래도 과거에 비해, 적의 개념 속에 대립하여 항상 분쟁 속에 있던 두 민족이 상호 평화를 위한 정치적인 노력을 일시라도 했었다는 사실은 앞으로 상황에 따라 다시 변할 수 있다는 이 지역의 장래를 위해 놀라운 변화이고,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들이 놓여있지마는, 미움과 증오의 이 땅에 평화를 위한 첫걸음을 이미 시작하였다는 사실이 중요하고(어이했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가 실제로 존재한다는 사실이 현실적으로 중요하다), 앞으로 여러 부분에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 올 수 있도록, 특히 선교적인 차원에서 세계교회와 한국교회가 이곳에 관심을 가지고 동참할 수 있도록 기도해야 한다. 두 번째, 종교적인 문제로 이 땅에 유대인들에게는 유대교, 팔레스타인에게는 이슬람 종교가 철저하게 뿌리 내려져 있다. 두 종교가 배타적이어서 다른 종교를 인정하지 않고 종교가 사회규범을 규정하는 종교적인 국가의 형태를 이루고 있다. 팔레스타인의 경우 대부분이 회교도이고 2% 정도가 기독교인데 그나마 구교(로마 가돌릭, 희랍정교회등)에 속해 있고 개신교의 숫자는 미미한 상태이다. 기독교인이라 해도 형식적 종교인의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삶을 위해서 여러 모양 타협하고 기독교인으로서 자기 정체성이 거의 없는등 영적으로 심각한 상태에 있다. 개신교 교회와 기관이 20곳이 있고 개신교인 수는 팔레스타인 전체를 통 틀어서 약 이천명 정도로 추산이 되고 있다. 잠자고 있는 이들의 영혼을 깨워 제2의 오순절 성령의 역사가 복음이 시작된 곳임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가장 필요로 하는 복음의 땅 끝에 임할 수 있도록, 21세기 선교의 불이 활활 타오를 수 있도록, 한국교회가 이곳을 위하여 기도하고 ,주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발벗고 나서야 한다. 세번째, 경제적 현실이 상당히 어렵다 자립경계가 아닌 이스라엘에 예속되어 있어 자립하지 못하고 있는데, 67년 이스라엘이 점령한 후 산업시설 들에 대한 투자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아 지역경제가 성장하지 못하고 대부분의 팔레스타인들이 유대인 지역에 가서 힘든 일로 생계를 유지하거나 다른 아랍국가 들로 가서 일을 하여 송금하는 돈으로 가족들이 살아가고 있다(이 나마 걸프전 이후 걸프 지역 국가들로부터 많은 팔레스타인들이 쫏겨 났다). G.N.P. 대비로 유대인들은 약 15000불, 팔레스타인들의 유대와 사마리아지역1200불, 가자 지구는 600불 정도로 심한 경제적 불균형을 이루고 있어, 어려운 경제적인 형편속에 팔레스타인 기독교인들 대부분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이슬람 근본주의자들이 세력을 확장할 수 있는 환경들이 조성되어 갈수록 모슬렘들의 숫자가 늘어가고 있다. 결국 경제적인 문제는 이 지역의 평화를 이루어 가는 과정에서 시급해 해결되어야할 난제임에 틀림없고 이를 위해 외부에서 여러 모양으로 원조를 하고 있지만 팔레스타인 경제를 회복하기에는 역부족이다(2천년까지 1백 10억 달러의 경제지원요청).
마지막으로 민족적인 문제인데 정말 풀기 어려운 난제인데 유대인과 아랍인들의 뿌리는 같은데도 서로 앙숙의 관계이고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주신 이 땅에서 아랍인들을 모두 내쫏고 자기들만의 신정국가를 세우기 원하고 아랍인들은 유대인들을 모두 없애야만 한다고 자기 주장만 내세우고있으니, 이 사고가 변하기 전에는 충돌을 피할 수 없는 현실이고 사실 중동의 피비린내 나는 갈등의 근본 원인은 자기들만이 신으로부터 선택을 받았다는 이기적인 민족 우월심 에서 시작되고 있다. - 팔레스타인 선교를 위한 자세 가장 먼저 선행되어야 할 문제는 우리들의 지금까지 고정된 이스라엘에 대한 인식의 변화이다, 아직도 많은 기독교인들이 구약적인 사고를 가지고 이 땅을 보고 있는데 유대인들은 택함을 받은 민족이고, 팔레스타인들은 구원을 받을 수 없는 백성으로 생각을 하여 은연중 이들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막연한 유대인에 대한 환상에서 깨어나 사도바울이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음이라 한 주께서 모든 사람의 주가 되사 저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부요하시 도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롬10:12-13) 말씀하신 것 처럼 예수님의 사랑으로 유대인과 팔레스타인 모두 똑 같이 구원의 소식을 들어야 할 하나님 앞에 동등한 백성들임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성지에 대한 개념 정리가 필요하다 단순히 눈에 보이는 기독교의 유적에 큰 관심을 갖는 것보다. 이 땅에 살고있는 사람들 -죽은 돌이 아닌 산돌- 에 더 관심을 가지고 이 땅에 오셨던 예수님의 의미를 다시 새기고 예수님이 이 땅을 바라보시며 품으셨던 마음들 즉 선교적인 자세를 확립할 수 있는 계기로 삼는 것이 더 바람직 할 것이다. 성지순례 그 자체에 의미를 두기보다는 예수님이 가셨던 그 역사적인 길들을 걸으면서 제자로의 삶을 다시 한번 확고히 하고 주님이 이 시대 우리들에게 원하시는 삶이 무엇인지 순례를 통하여 자신에게 물어 보아야 한다. 편협적인 편견에서 벗어나 예수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진정한 의미를 깨달아야 하고 비록 세상이 팔레스타인들에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볼지라도 우리 크리스챤 들은 예수님의 사랑으로 이들의 형편과 처지를 이해하고 이들의 영혼도 주님 앞에 귀한 존재임을 깨달아 이곳에 진정한 주님의 나라가 임하도록 기도해야 한다. - 팔레스타인 선교의 중요성과 방법 1) 선교의 중요성 지리학적으로 이 지역은 지중해를 끼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유럽대륙을 연결시키는 교량 역활 때문에 역사적으로 많은 사건들이 일어났고 현대에 와서도 이 지역의 중요성은 새삼 말할 필요가 없다. 특히나 중동의 엄청난 석유로 인하여 경제적인 측면에서 더 할 나위 없이 세계의 관심 속에 있다 세계의 열강들은 이곳에 자기들의 이익을 위한 교두부를 확보하여 기득권을 유지하기 유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91년에 일어난 걸프전과 최근의 이라크 문제는 그 대표적인 예이다.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함에 따라 이 지역에는 새로운 정치환경이 조성되었고 그 결과로 이스라엘과 아랍국가 들간의 끊임없는 대결구도가 시작되었다. 아랍국가 들은 신생 이스라엘국가를 제2의 십자군으로 보고 배후에서 독립을 도운 서방세계가 기독교 국가라는 인식하에 반 기독교정책을 더욱 고수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기독교의 선교활동 자체가 어려운 가운데 있다. 특히 이스라엘의 독립으로 대대로 살아온 땅을 유대인들에게 빼앗기고 가장 큰 타격을 입은 팔레스타인 문제는 아랍국가 들에 있어서 반드시 같은 아랍형제의 입장에서 해결해야만 할 문제였다. 다시 말하면 중동의 핵인 팔레스타인 문제 해결 없이는 중동문제 해결이 있을 수 없었다. 유엔을 비롯한 많은 나라들이 이 일을 위해 많이 노력했고 중재안도 내놓고 했지마는 서로의 입장차이로 거부되고 항상 긴장과 갈등관계에 있다. 그러나 냉전하의 동,서진영의 이념대결이 구 소련의 붕괴로 끝나면서 구 소련진영에 가담해 잇던 아랍 국가들과 이스라엘을 교두부로 중동에서 위치를 확보하였던 서방진영, 그리고 이스라엘 사이에 새로운 정치 질서가 필요하게 되었다. 모두들 이념보다는 실리적인 차원에서 대결보다 서로의 필요에 의한 공존을 원하게 되었고 그 결과로 마드리드에 모여 역사적인 이스라엘과 아랍국가간의 평화회담이 시작되었다. 여러 의제들이 오고 갔지만 가장 중요한 문제는 팔레스타인 문제로 촞점이 모아졌고 결국은 오슬로에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평화협정으로 이어져 서로간의 공존의 길을 모색하게 되었고 , 팔레스타인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보이자 주변의 아랍국가들도 이스라엘과 관계를 개선하기위해 노력하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나라가 요르단으로 지금은 자유로이 왕래가 가능하게 되었고 걸프 지역과 북 아프리카의 아랍국가 들이 외교적으로 서로를 인정하는 등 관계 개선 중에 있다. 이상과 같이 팔레스타인 문제는 단순히 자체적인 문제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동전체의 문제이고 세계적인 핫-이슈이다. 중동지역은 비쟌틴 시대 에는 기독교 문화가 꽃피었던 기독교 지역이다. 그러나 기독교가 세상에 대해 빛을 잃어 버리고 교회자체 문제에만 매달려 사회적인 영향력을 상실하고 복음전파에 등한히 하게 됨에 따라 자연히 교회는 쇠퇴하게 되었고 사람들의 마음도 교회로부터 멀어지게 되었다. 7세기경 이슬람종교가 점령한 후 기독교는 현저하게 약화되어 명맥만을 유지하게 되었고 십자군의 영향과 종교적 정치적인 이유로 기독교에 대해 문을 닫고 복음 전파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아직 갈길은 멀지만 중동 평화회담을 통하여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주변의 아랍국가 들이 부분적으로 서로를 인정하고 왕래도 가능하고 서구 사회에 대해 필요에 따라 문을 열기 시작했다. 물론 아직도 많은 문제들이 현존하지만 이는 선교를 활기치고 가능케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보수적인 모슬렘들은 더욱 강경하게 되겠지만 대부분의 아랍인들은 종교적인 문제들도 중요하지만 현실적인 문제에도 민감하기 때문에 지금까지 일방적인 선교방법이 아닌 이들을 이해하고 이들의 필요에 따라 조금씩 예수의 사랑으로 접근한다면 선교의 문이 열리리라 확신을 한다. 특히난 현재의 여러 가지 상황으로 인해 어려움 속에 있는 팔레스타인들에게 좋은 이웃으로 다가간다면 그 어느 때 보다 접근이 가능하다고 본다. 팔레스타인 선교는 바로 중동의 다른 지역으로 이어진다. 많은 수의 팔레스타인들이 중동지역에 흩어져있고 서로 왕래가 가능하기에 중동선교를 위한 전초기지를 만들어 다른 지역으로 직.간접 선교를 가능케 해야 한다. 다른 측면에서는 유대인 선교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아직까지도 유대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고 선민이라는 스스로의 자부심으로 영적으로 교만한 상태에 있다. 그렇기에 지금도 이방인에 대한 태도는 전과 달라진 것이 없고 자기들만 거룩한 백성으로 여겨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믿는 이방인의 수가 충만할 때 유대인들이 시기가 나서 마지막 때 주님께 돌아온다고 하였다. 결국 유대인 선교는 선교의 마지막 종결 점 이다. 팔레스타인이야 말로 이 땅에서 유대인들과 같이 더불어 직접 사는 이방인들이기에 이들에 대한 선교는 결국 유대인 선교로 이어진다. 2)선교의 방법 지금까지 서구교회 들이 이 지역을 복음화 하기 위한 노력들을 많이 하였다 많은 성과도 있었지만 여러 가지 제약으로 어려운 가운데 있고 현재는 불확실한 정치적인 미래 때문에 조심스럽게 관망을 하고있는 상태이다. 대부분이 모슬렘이고 소수의 기독교인들로 구성되어 있는 팔레스타인 선교는 신중하고 인내를 가지고 담대하게 나아가야 한다. 가능한 선교방법 들을 살펴보고 죠이 하우스의 선교전략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교육선교 이미 나이든 어른들을 상대로 복음을 전할 수 있지만 여러 가지 사회적,종교적 여건들이 가로막고 있다 하지만 어린이를 위한 교육선교는 가능성이 있는 분야이다. 팔레스타인 인구의 60%가 18세 이하이고 각 가정마다 많은 어린이들(모슬렘 가정은 산아 제한을 하지 않아 보통 7-8명의 자녀를 둠)이 있음에도 교육환경이 열악하기 때문에 교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공립학교의 수준은 현저히 떨어지고(교실 부족으로 2부 수업을 하고, 학교 시설들이 낙후되어 있으며 교사에 대한 대우가 형편이 없어 사기들이 떨어진 상태)일부 사립학교(주로 구교계통으로 그나마 수준을 유지하고 이곳 팔레스타인의 당면한 문제 중 시급히 해결해야 할 분야가 교육부분 인데 자체적으로 손을 못쓰고 있다. 지금 이야 말로 선교적인 차원에서 교육을 통한 선교가 가능한 찬스이다. 죠이 유치원은 이러한 현실 인식하에 94년 가정에서 10명의 아이들로 가정 유치원을 시작하여 95년 현 학교 건물을 임대하여 내부수리를 마치고 시설을 갖추어 96년 4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교육부로부터 개신교 유치원 허가를 받아 기독교 교육을 시키고 있다. 교육내용은 온전히 선교원 형태로 운영을 하고있고 2명의 팔레스타인 선생님과 함께 성경에 입각한 교육을 시키고 있다. 처음 등록 당시 학부모들에게 유치원의 성격을 주지시키고 교육내용에 동의를 하면 부모들의 싸인을 받는다. 물론 어려움이 있지만 확고한 신념과 교육의 중요성을 인식시키고 부모들의 자녀 사랑이 어우러져 교육선교를 가능케 하고 있다. 팔레스타인 선교는 이 아이들을 통하여 이루어질 수 있도록, 교육선교의 중요성을 다시 인식하여 선교의 문들이 더 넓게 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 학기는 여러 가지 어려움 들로 인해 임시로 유치원 문을 임시로 닫은 상태이고 여건이 하락을 한다면 빠른 시일 내 다시 유치원 사역을 하려고 한다 문화선교 현 시대 사탄은 여러 유의 문화적인 접근으로 우리들을 무너뜨리려 하고 있다. 우리는 선교 전술에서 문화를 잘 선용하면 직접접근하기 어려운 선교의 현장에서 문화를 통한 접촉점을 찾고 선교를 가능케 하는 등 상당한 효과가 있다. 지역의 특성상 문화적으로 황폐한(문화 시설이 전무한 상태) 이곳에 다양한 형태의 예수문화를 심어 선교의 접목점 으로 활용할 수 있고 특히 나 팔레스타인들은 노래와 놀기를 좋아하는 민족이기 때문에 음악, 무용, 기타 다양한 문화적인 접근이 용이하다.. 죠이 하우스 에서는 이를 위하여 한국문화센터를 개설하여 팔레스타인 정부의 문화부로부터 문화원 설립 허가를 받았다. 한국문화원을 통하여 이들에게 한국의 문화(특별히 기독교문화)를 소개하고 한국과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인상을 심기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들이 선교사를 볼 때 제일 먼저 한국인으로 인식하기 때문에 한국인에 대한 좋은 이미지는 결국 선교에 긍정적인 요소로 작용을 하게 된다. 교실 한 칸에 한국을 알릴 수 있는 여러 가지 소품을 전시하고, 대사관의 협조를 얻어 한국에 관한 자료를 정리해놓고 각 기관에 배포하고 있다. 여러 차례 음악회도 열어 주민들에게 문화 욕구를 충족시키고 있고 앞으로 기회가 허락한다면 자주 음악회와 문화행사를 할 려고 한다. 문서선교 많은 모슬렘들의 가장 큰 약점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자기들의 경전인 코란에 대해 잘 모르고있다는 사실이다. 코란에는 예수님에 대해 예언자로 언급을 하고있어 단지 다른 예언자들처럼 이해를 하고있는 실정이기에 문서를 통한 복음 전파는 실로 중요하다. 이 일들을 위해 서구의 문서 사역팀이 문서선교에 참여를 하고 있는데, 우리 죠이 하우스도 문서선교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 문서선교회를 조직하여 사역을 하였는데, 한번은 신문에 성경과 나사렛 예수 비데오가 필요한 사람들은 연락을 하도록 광고를 냈었는데, 놀랍게도 128통의 편지가 와서 보급을 하였는데 편지를 보낸 사람들 대부분이 모슬렘들이고 지역도 팔레스타인 전역에서, 특히 헤브론과 가자지역 에서 많이 왔다. 비데오 테이프를 100개를 복사를 하였는데, 성경과 비디오 테이프를 받은 사람들 중 상당수가 복음에 대해 알기를 원하여 다시 편지를 보내는데 지역교회 목사님이 일일이 편지의 질문에 답을 하였다, 이런 정황을 보면서 모슬렘들이 예수님에 대해 복음에 대해 은밀히 알기를 원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더 많은 노력들이 문서선교에 투자되어야 함을, 문서를 통한 선교가 가능함을 느끼고 있다. 현재는 문서 사역을 여러 여건 상 중단한 상태이나 앞으로 기회가 되면 다시 문서 사역을 시작 해야만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현지인 양성 직접적인 선교는 아니지만 미래의 선교를 위하여 대단히 중요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결국 원주민 선교는 원주민 손으로 해야 하기 때문이다. 선교사가 모든 일을 다 할 수 없고 현지인을 훈련시키고 양육을 해서 자기 민족을 위하여 헌신할 수 있는 미래의 지도자를 양성해야 한다. 현재보다 미래를 바라보고 과감하게 투자가 되어야 하고 신실한 일군을 키우는 일에 노력을 해야 한다. 이 일을 위해 지금까지 베들레헴 신학교와 협력하여 학생들을 도왔고, 이 학교 출신인 데니 군을 필리핀 장로신학교에 유학을 보내어, 돌아와 지금은 목사 안수를 받고 지역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으며, IMF 전에는 죠이 장학회를 만들어 지역교회의 중 고등학생 중 신실한 학생들을 선발해서 장학금을 지급하였는데, 현재는 정기적이 아닌 여건에 따라 필요한 학생들을 돕고 있는데, 이 또한 기회가 되다면. 계속해서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기독 학생들이 신앙으로 자라도록 돕고 가능하면 더 많은 학생들을 양성하기를 원하고 있다. 이외에 여러 사역이 있는데 교회사역은 현지 교회와의 관계, 현지의 상황들을 잘 파악해서 ,가능하면 현지교회와의 협력 사역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치유 선교 기후와 음식,환경들로 으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건강의 어려움을 호소 하는데, 상대적으로 이곳의 의료 시설들이 낙후 되어 있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들이 많고, 특히 관절과 허리 통증을 호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자주 이 들에게 척추교정을 통하여 도움을 주었고, 이를 통해 현지인들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며, 먼저 육의 치료와 함께 영혼의 문제도 같이 치료 하는 좋은 선교의 도구가 되고 있다 -.사역에 있어서 주의해야 할 부분 인간의 방법으로 하는 사역은 곧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 절대 하나님의 인도 하심과 도우심을 구하면서 인내와 비젼을 가지고 한 걸음 한 걸음 나가야 한다. 1) 선교지의 가장 시급한 필요가 무엇인가를 속히 파악하고 밑에서부터 차근차근 현지인들과 끈끈한 관계를 맺어야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절대 물질적인 것으로 현지인들의 마음을 사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이곳 주민들의 생각에는 선교사는 물질이 풍부한 사람으로 인식되어 처음부터 물질을 요구하고 또 그러한 목적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주의를 해야 한다. 이는 일부 선교사중 물질을 가지고 현지인들을 이용하였고, 현지인들 또한 선교사를 이용하였기 때문이다. 선교 현장에서 물질은 굉장히 중요하다. 하지만 물질만을 가지고 선교를 이루려는 생각은, 당장 효과가 보이는 것 같지만 결국은 물질이 선교를 망치게 한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선교는 밑에서부터 인내를 가지고 쌓아 올려야 한다. 2) 현지 상황을 이해하기 전 까지는 일을 서두르지 말고 ,사람들과의 관계, 현지교회와의 관계등 사역을 위한 기초를 잘 닦아야 한다. 3) 현지인들에 대한 동정은 금물이다 인간의 감정은 상황에 따라 수시로 변하기 때문이다 오직 필요한 것은 영혼을 사랑하는 변치 않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기 위해 자신과의 끊임없는 싸움을 해야한다. 4) 절대 자기자신의 일을 내 세우지 말고 오로지 예수그리스도의 이름만을 높여지도록 항상 더불어 살고, 겸손하게 현지인들을 세워주며 같이하는 사역을 위해 2등의 정신을 가져야 한다. -. 팔레스타인 선교의 전망과 한국교회의 역할 복음의 마지막 땅끝 이곳의 형편이 간단하지는 않지만 믿음으로 인내를 가지고 이제 시작이라는 마음으로 접근 가능한 부분들부터 차근차근 준비하며 사역을 감당하면, 분명코 주님은 이곳에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줄 확신하다. 세계선교의 흐름은 서구교회에서 이제 제3세계 교회로 이동 중에 있고 그 중에서도 복음에 열정적인 한국교회를 통하여 21세기 마지막 선교를 주님께서 감당케 하시리라 확신을 한다. 특히 고난의 역사를 가지고있는 한민족은 지금도 고난 속에 있는 팔레스타인들을 누구보다도 잘 이해할 수 있고,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이 강하기 때문에 이들과 쉽게 어울려져 선교를 가능케 할 수 있다. 그리고 선교를 이루어 가는데 절대 필요한 경제적인 부분들을 하나님이 한국교회에 허락하셨기에 물질을 귀하게 잘 선용을 하면 불가능하게 보이는 이슬람권 과 유대인선교도 한국교회를 통하여 이루어지리라 확신을 하면서, 앞으로 이곳 중동과 팔레스타인에 선교적인 인식들이 새롭게 변하여 21세기 선교의 놀라운 역사가 황무지에 필 수 있도록 더 많은 기도와 사랑, 관심들이 이곳에 모아지기를 기도한다. 갈수록 어려워 지는 이곳 형편 이지만 기도 만이 선교를 가능케 함을 믿고 마지막 복음의 땅끝을 향한 주님의 명령에 한 마음으로 같이 가는 선교가 되기를 바란다.
베들레헴 강 태윤 선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