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근대사에서 가장 큰 사건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이스라엘(1948.5.14.) (AD. 70 예루살렘 Titus장군)이 1900 여년만에 이스라엘 국가가 회복된 것, 예루살렘(1967년 6일전쟁) 회복된 것.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섭리라고 생각 한다
2. 그러면 이스라엘은 어떤 나라인가? 하나님이 세우셨고, 제사장 국가로 삼으셨고,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셨고(창 12:1-3) 예수님이 유대 혈통에서 탄생하셨다. 하나님이 유일하게 내 나라라고 칭하셨고, 유대백성을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셨다. 따라서 이스라엘은 세계 200여 나라중 하나가 아니라 이스라엘 대 모든 이방국가의 개념에서 보아야 한다(롬 1:16 첫째는 유대인이요 또한 헬라인 에게라) 여기서 헬라인은 모든 이방인의 대표적인 의미이다. 참 감람나무(이스라엘), 돌 감람나무 (이방국가) “또한 참감람나무가지 얼마가 꺾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이방인)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은자가 되었은즉 (롬11:17)” 3. 그들이 1900여년 동안 왜 나라도 없이 유리하며 고난을 받았나? 유대인의 수난사 반 유대주의 태동
기독교 초기 예수님의 12제자들이 복음을 전했을 때에는 유대교와 기독교 는 별로 갈등이 없었다. 베드로가 복음을 전하매 하루에 3000명씩 회개하고 돌아오기도 했다. (행 2:41) 사도행전 6장까지는 하나님 말씀이 왕성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제자의 수가 심히 많아지고 허다한 제사장의 무리도 이 도에 복종하니라(행 6:7) 스테반이 순교당한 후 기독교인들이 흩어지기 시작하였다. 빌립에 의해서 사마리아에서도 복음을 전했고 에디오피아 내시에게도 복음을 전했고 베드로에 의해서 고넬료와 그 가족 및 친지들에게 복음이 전해졌다. AD 70년 티투스 장군에 의해 예루살렘 성전이 훼파된 후 교회와 회당 간에 갈등이 생겨 유대교 안에서 분열이 일어났다. AD135년 그 당시 랍비이던 아키바를 중심으로 코크바를 메시야라고 선언하면서 로마에 대항하여 독립을 쟁취하고자 하였다. 3년 동안 투쟁했으나 코크바와 아키바는 살해당했고 독립운동은 실패로 돌아갔다. 이때 유대교를 추종하던 에비온파는 열심히 독립 운동을 했고, 바울의 복음에 영향을 받았던 나사렛파는 페트라(요르단)로 피신하였다. “그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찌어다 (마24:16)”라는 말씀에 따라 피신했다고 한다. 그후로 그들(초대교인들)은 배신자로 낙인 찍혔고 사도들의 사후 복음이 비유대인들에게 전승되었다 오리겐(AD 185-253)과 대체신학 AD 70년에 성전이 파괴되고 예루살렘이 함락되자 세계 카톨릭 지도자들은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는 이 땅에서 없어졌다고 생각했고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인 사람들로 낙인 찍혔다. 오리겐은 이스라엘이 없어졌으니 성경에 이스라엘과의 하나님의 약속은 교회(이방인)가 이어 받는다는 이론 즉 대체신학을 주장하였다. 이 대체신학 사상은 유명한 교회 역사가인 유세비우스(263-339)로 이어졌다. 유세비우스는 콘스탄티누스의 친구이자 조언자로서 콘스탄티누스가 기독교를 국교로 승인하면서 반 유대사상이 로마의 국가 정책으로 뿌리 내리게 되는데 큰 역할을 하게 되었다 이 대체신학은 이스라엘이 1948년 독립하기 전까지는 대부분의 교회에서 중요한 신학 이론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그 영향을 무시할 수 없게 되었다.
AD 313 콘스탄티누스 기독교를 국교로 선언 이제까지 탄압받던 기독교가 콘스탄티누스에 의해 국교로 인정받음에 따라 기독교는 외형적으로는 많이 부흥하였다. 그러나 콘스탄티누스의 반 유대교 정책에 따라 유대교는 핍박을 받았다. 개종 아니면 추방당하였다 이로 인하여 유대인들은 세계 여러 나라를 유리하면서 많은 고난과 핍박을 받게 되었다.(디아스포라) 반 유대교사상은 교부인 어거스틴, 요한 크리소스톰으로 이어졌고 십자군 전쟁에도 큰 영향을 주었다
십자군 전쟁 무슬림을 예루살렘에서 추방하기 위해 조직된 십자군은 1096년부터 1291년까지 8차례 출정하였다. 1099년에 마침내 예루살렘을 탈환한 후 유대교 회당을 찾아 다니며 방화하고 유대인들은 무참하게 살인하였다. 당시 예루살렘에는 약30만명의 유대인이 살았었는데 299,000을 죽였다고 한다 십자가의 깃발을 앞세운 그들이 잔인함으로 인해 유대인들에게는 십자가가 사랑의 상징이 아니라 칼과 죽음의 상징이 되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지금까지도 이스라엘 도로에는 사거리가 없으며 병원 구급차도 십자가를 표시하지 않으며 심지어 수학교과서 덧셈까지도 십자가로 표시하지 않는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지 않는 중요한 이유중 하나는 십자가가 화해와 용서가 아니라는 것을 뼈저리게 체험했기 때문이다. 이 때받은 상처 때문이며 지금도 교회에 마음문이 닫혀있고 쉽게 열려고 하지 않는다. 섹스피어의 ‘베니스상인’이라는 소설에서도 유대인을 인정없는 고리대금 업자로 부각 시켰다. 늘 추방당하면서 변변한 직업을 갖기 어려웠던 유대인들은 그 당시 유럽 귀족들이 천시하는 금융업에서 종사하면서 성경대로 정당한 이자만 받았지만 고리대금업자로 표현되었다 루터의 종교개혁 ‘루터의 두 얼굴’이라는 영화에서 나타났는데, 하나는 그 당시 부패했던 카톨릭에 대항하여 종교개혁을 이루어 개신교가 탄생하게 되었고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여 성경이 널리 보급되면서 복음이 전 세계로 전파되었다. 다른 하나는 그도 대체신학의 영향을 받아 반 유대교 정책을 폈으며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인자로 낙인찍고 핍박하였다. 루터의 영향을 받아 히틀러가 2차세계대전 때 폴란드에 위치한 독일의 강제수용소 Auschwitz에서 어린이 130만명을 포함하여 600만명의 유대인을 무참히 죽이는 비극이 발생하였다..(홀로코스트 1939.) 구소련에서는 포고름(집단박해)으로 유대인이 사는 167개 마을을 방화하고 학살하기도 하였다. 종교개혁에 대항하여 카톨릭은 종교재판으로 개신교 신자들을 처벌하였다. 카톨릭은 유대인들에게는 개종을 강요하고 거절할 때에는 재산을 몰수하고 추방시켰다. 카톨릭은 프랑스(1306) 독일(1350) 스페인(1492) 포르투갈(1515) 터키(1881)에서 유대인들을 추방하였다. 따라서 유대인이 세계에서 유리방랑하는 삶을 살게 된 데에는 교회의 책임이 크다고 할 수 있다. 4. 그러면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영원히 버리셨나요? “그러므로 내가 말하노니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버리셨느뇨 그럴 수 없다.”(롬11;1)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자기가 선택하신 유대인을 심판은 하시지만 결코 버리시지는 않으신다.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내가 북쪽에게 이르기를 내 놓으라, 남쪽에게 이르기를 가두어 두지 말라 내 아들들을 먼 곳에서 이끌며, 내 딸들을 땅 끝에서 오게 하며.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사43:5-7)라는 약속의 말씀이 신실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알리아(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이 이스라엘로 돌아 오는 것)
오스만 터키가 지배하던 1500년대에는 약 1000가구의 유대인들이 이스라엘 땅에 살고 있었다. 1860년에는 ‘예멘 모세’라는 유대인 마을이 처음으로 예루살렘에 생겼고, 1875년에 예루살렘 북서쪽 1km 지점에 하시딤이라는 마을이 생겼다. 1882년 러시아에서 1차 알리아가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것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진행 중이다. 1900년대초부터 본격적으로 알리야가 시작되었다. 1948년 이스라엘 독립이후 알리아의 숫자는 눈에 띄게 늘어나고 있다. 현재는 북방은 동유럽 및 러시아로부터, 서방은 스페인 포르투갈등 서유럽으로부터, 남방은 에디오피아 등 북 아프리카에서, 동방은 중국등 아시아 국가로부터 그동안 세계 여러 지역에 흩어져 살던 유대인들이 이사야 말씀처럼 이스라엘로 돌아오고 있다. 하나님 말씀이 신실하게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5. 이스라엘의 회복 과정 드레프스 사건 이스라엘은 1517년부터 1917년까지 약 400년간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받았다. 1894년 유대인으로 당시 프랑스 군대 대위였던 드레프스가 군사기밀을 독일군에게 넘겨주었다는 이유로 반론을 제기할 기회도 주지 않은 채 날조된 허위증거로 종신형에 처했다. 이는 당신 유럽이 반 유대인 정서를 반영하는 것이었으며 오래 동안 나라가 없었기에 받는 설움이었다. 몇 년후 용감한 프랑스 한 신문기자에 의해서 거짓 증거를 폭로하고 재심을 요청하였다. 당시 대문호였던 에미졸라가 <로고르> 라는 잡지에 ‘나는 고발한다’ 라는 제목으로 대통령에게 공개 서한 형식으로 드레프스의 무죄를 주장하며 재심을 요청했다. 1906년 무죄로 석방되었고 곧바로 소령으로 복귀하였다. 이 사건은 단지 유대인이라는 이유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차별을 받게된 일례에 불과하다.
유대국가 건설 유대인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함을 지켜본 부다페스트 출신 기자였던 헤르즐은 이스라엘 땅에 유대국가의 건설을 피력한 ‘유대국가’ 라는 타이틀로 1896년에 소책자를 출판하여 유대인들에게 배포하였다. 이 소책자에서 ‘시온주의 운동’(예루살렘으로 돌아가자는 운동)의 필연성을 피력했다. 유대인들은 세계를 유리하면서도 해마다 유월절 행사 말미에는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라는 구호를 외치고 헤어졌다. 1897년 제 1차 시온주의 회의가 스위스 바젤에서 204명이 참석하여 헤르츨을 초대 의장으로 선출하였다. 그는 앞으로 50년 내에 유대국가가 세워질 것이라고 천명했다. 50년 후 1947년 유엔에서 이스라엘의 국가 건설을 승인하였고 1948년 5월 14일 1900년만에 이스라엘 국가가 기적같이 회복되었다. 벨푸어선언 1914년 세계1차 대전(1914-1918) 때 영국, 프랑스, 러시아의 연합국이 독일과 오스트리아 연합국에 대항하여 싸웠다. 이스라엘로부터 무기를 지원받은 영국은 당시 외무부 장관인 벨푸어가 팔레스틴 땅에 이스라엘 국가를 세우는데 도와주겠다고 약속했다(1917년 11월 2일 벨푸어 선언). 1차대전후 국제연맹(UN 전신)은 이스라엘 땅을 영국이 위임 통치하도록 승인하였다. 그러나 영국은 1915년에 팔레스틴 지역에 아랍국가를 세워주겠다고 약속을 했었다.(맥마흔 선언)
이스라엘 국가 회복 1947년 11월29일 이스라엘 건국 관한 안건이 유엔에 상정되어 많은 아랍 국가들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찬성 33표, 반대 13표, 기권 10표로 가결되었다. 그래서 유엔에서는 이스라엘 땅을 유대지역, 아랍지역, 국제관할인 예루살렘 지역으로 분할하는 결의안을 채택하였다. 1948년 5월 14일 벤구리온 초대수상이 독립 선언문을 낭독하였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살던 그 땅에 자신의 나라를 세운다는 것은 참으로 꿈과 같은 일이었다. “내가 내 백성 이스라엘이 사로잡힌 것을 돌이키리니 그들이 황폐한 성읍을 건축하여 거주하며 포도원을 가구고 포도주를 마시며 과원을 만들고 그 열매를 먹으리라. 내가 그들을 그들의 땅에 심으리니 그들이 내가 준 땅에서 다시 뽑히지 아니 하리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암9:14-15) 이스라엘 회복을 약속하신 말씀을 성취하셨다. 하나님은 아무리 세월이 많이 흘러도 자신의 약속을 잊지 않고 반드시 이루시는 신실하신 분이심을 다시금 깨닫게 해준다. 중동전쟁 1차 중동전쟁 이스라엘이 나라를 세우는 것을 용납할 수 없는 아랍 5개국(이집트, 요르단, 레바논, 시리아, 이라크)이 연합하여 독립 한 다음날 1948년 5월 15일에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다. 군사력의 절대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승리하였다. 그 결과 1949년 유엔의 주재로 휴전 협정을 체결할 때는 가자지구, 요르단강 서안지구를 제외한 이스라엘 영토의 70%를 차지하게 되었다. (독립당시에는 51%였었음) 2차 중동전쟁 1956년 이집트는 시리아, 요르단과 연합하여 스에즈 운하를 국유화 하면서 이스라엘 선박을 통과하지 못하게 하였다. 영국, 프랑스와 이스라엘이 연합하여 스에즈 운하 국유화를 풀도록 하였다. 이 전쟁의 승리로 이집트 소유였던 시나이 반도를 이스라엘이 점령했었다. 후에 세계 여론에 따라 다시 이집트에 돌려주었다. 3차 중동전쟁 1967년 6월5일 이집트는 2차 중동 전쟁의 패배에 대한 보복으로 시리아, 요르단, 이라크와 연합하여 이스라엘을 공격해왔다. 그러나 6일 만에 이스라엘의 승리로 끝나서 ‘6일 전쟁’이라고 불리워진다. 이 전쟁으로 동예루살렘을 차지하였다. 이곳은 성지로써 아브라함이 이삭을 바쳤던 성전산(모리아산, 아리우나 타작마당), 즉 솔로몬의 성전이 세워졌던 곳이다. (이 성전산은 유대교, 이슬람교, 기독교가 다같이 자신들의 성지로 여기는 매우 중요한 곳이다) 그러나 이곳에 무슬림의 사원인 황금돔이 세워져 있고, 이 곳은 아랍인들의 관할지역이다. 4차 중동전쟁(용 키플전쟁) 1973년 10월 6일 유대인들의 속죄일(히브리어로 욤키플)에는 유대인들은 하루 종일 금식하며 기도하는 날이다. 그 날 이스라엘을 공격해 왔다. 첫 날에는 유대인들은 싸울수 없어서 전세가 불리했지만 결국 승리하였다. 무슬림들은 전쟁으로 승리하지 못하자 PLO(팔레스틴 해방기구)를 구성하고 하마스등 테러 단체를 만들어 끊임없이 이스라엘에 대항하여 투쟁하고 있다. 6. 그러면 이스라엘이 왜 2000여 년 동안 나라 없이 유리 하며 온갖 핍박을 받았을까? 나는 그들의 죄악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첫째는 제사장 국가로 맡은 사명을 잘 감당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 다. 선지자들을 통해서 여러 차례 경고했음에도 불구하고 회개하지 않고 오히려 선지지자들을 핍박하고 죽이기까지 하였다. 둘째는 예수님을 죽였기 때문이다고 생각했다. ‘그 피를 우리와 우리 후손 에게 돌리소서’(마 27:25) 유대인들이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 심판 받은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을 공부하며 더 크신 하나님의 뜻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것은 우리 이방인을 구원하시고자 이스라엘을 희생시켰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예루살렘은 이방인의 때가 차기까지 이방인들에게 밟히리라”(눅 21:24) 라는 말씀과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지혜 있다 하면서 이 신비를 너희가 모르기를 내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 신비는 이방인의 충만한 수가 들어오기까지 이스라엘의 더러는 우둔하게 된 것이라”(롬 11;25) 라는 말씀을 통해서 우리 이방인을 구원하시고자 하는 하나님의 계획 즉 신비가 있으셨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참감람나무가지 얼마가 꺽이었는데 돌감람나무인 네가 (이방인)그들 중에 접붙임이 되어 참 감람나무 뿌리의 진액을 함께 받은 자가 되었은즉 (롬11:17)”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통해서 예수님 재림하실 때를 준비해야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그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마23: 32-33) (주: 이스라엘은 가을에 시작하여 여름에 끝난다) 이스라엘이 회복되었고(1948.5.14.) 예루살렘이 6일 전쟁을 통해서 회복 되었으니 이방인의 수가 거의 찼다고 생각된다. 이제 시대를 분별할 수 있어야 한다. 7. 그러면 어떻게 예수님 재림을 준비하여야 할까? 첫째 ;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언되 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 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 24:14) 둘째 :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제부터 너희는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할 때 까지 나를 보지 못하리라(마23:39)
다시 말하면 복음이 온 세상에 전해지고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유대왕으로 모셔 들여야 한다. 즉 그들이 기다리는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메시야인 것을 그들은 왜 안 믿을까? 유대인의 수난사에 살펴본 바와 같이 교회의 책임이 크다고 말할 수 있다.
(1) AD 313년 콘스탄티누스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면서 반유대인 정책을 폈다. (2) 교부인 오리겐의 대체 신학의 영향이다. (3) 십자군 전쟁이다 (4) 종교재판(카톨릭) 그러면 우리 이방인들은 어떻게 예수님 재림을 준비해야 될까? 하나님은 자기 백성 유대인을 절대 버리지 않으신다(롬11:1) 유대인들이 1948년 독립하여 국가를 세웠고 하나님께서 흩어져 살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 모으신다고 말씀하셨다”(사 43:6-7) 하나님 약속하신대로 1800년대 후반부터 알리야를 통하여 많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국으로 돌아왔고 지금도 계속 돌아오고 있다. 1967년 동예루살렘을 회복으로 예수님을 메시아로 영접하는 유대인들이 즉 메시아닉쥬 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제 영적으로 회복하여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야가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을 믿게 되면 된다. 이 일을 위하여 이방인인 우리들이 빚진 자의 심정으로 유대인들을 위로(특히 십자군 사건)하며, 격려 하며 기도와 물질로 그들을 도와야 된다고 생각한다. 참감람나무인 이스라엘의 가지가 꺾임으로 인하여 돌감람나무인 이방인들이 참감람나무인 이스라엘에 접붙여져서 참감람나무의 진액을 함께 받는 자가 되었으니 이방인인 우리들이 높은 마음을 품지 말고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된다. 그렇지 아니하면 하나님이 원가지도 아끼지 아니하셨은즉 우리 이방인도 아끼지 아니 하시리라.(롬11;21) 예루살렘 평화라는 뜻을 가진 도시이다. 예루살렘은 유대인, 무슬림, 기독교인들이 서로 자신들의 성지라고 주장하여 전략적으로도 중요하며 첨예하게 의견이 대립되는 곳이다. 3000년 전 다윗 왕이 점령하여 세운 도시로써 그 이름이 한 번도 바뀌지 않고 지금까지 이어오는 곳이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두고자하여 하나님이 택한 성이다( 왕상 11:36, 왕하 21:4) 많은 백성과 강대한 나라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만군의 여호와를 찾고 여호와께 은혜를 구한다(슥 8:22) 예수님께서 유월절 절기 등 절기 때 마다 올라가시던 곳 유월절에 어린양으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곳 사흘 만에 부활하시고 하늘로 승천하신 곳 영광의 왕 심판의 왕으로 다시 재림하여 오실 곳 복음이 시작되어 모든 족속에게 전파되게 하는 곳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부어 주신 곳 많은 나라들이 공격할 때 친히 멸하시겠다고 하신 곳 재림하실 때 첫발을 내디드실 곳 감람산이 있는 곳 하나님이 세우신 하나님의 도성이며, 세상의 도시 이스라엘의 수도 유대인이 1900년 동안 전 세계 흩어져 살면서 해마다 유월절 행사 말미에 ‘내년에는 예루살렘에서’라고 외치던 곳 최근에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 수도를 예루살렘으로 옮기겠다고 천명한 것도 우연한 일이 아니며 곰곰이 묵상해 보아야 할 일인 것이다.
8. 결론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이니까? 라고 제자들이 질문했을 때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바가 아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서 오직 성령이 너희에 임하시면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 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6-8)“고 말씀하셨다. 결론적으로 이 둘(유대인과 이방인) 로 자기 (예수님)안에서 한 새사람을 지어 화평케 하시려는 주님의 뜻이 이루어 질 때 평화의 도시인 예루살렘으로 예수님께서 재림 하시리라 믿는다 (엡 2:15) 복음이 유대에서 시작되어 유대까지 전파되어 유대인과 이방인이 한 새사람이 되어 “아멘 주 예수여 어서 오시옵소서” 라고 외치며 유대의 왕이신 예수님을 우리 모두의 왕으로 모실 때 예수님께서 재림 하실 것으로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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