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이 나가 그 하신 말씀대로 만나 유월절을 준비하니라 때가 이르매 예수께서 사도들과 함께 앉으사 이르시되 내가 고난을 받기 전에 너희와 함께 이 유월절 먹기를 원하고 원하였노라 (눅 22:13-15) 우리 주님의 공생애 기간 중 유월절은 잔치 같은 행사였습니다. 예루살렘 역사 상 그 어느 때도 전 세계에서 온 유대인이 그렇게 기쁘게 모여든 적이 없습니다. 이 때는 이스라엘에 사는 모든 남자들이 성전에서 주님 앞에 보여야만 하는 세 절기 중 첫 번째 절기였습니다. 다른 두 절기는 칠칠절과 장막절이었습니다. 그러나 유월절에는 특별한 매력이 있었습니다. 어떤 유대인이 어디에 살든 예루살렘은 거룩한 도시였습니다. 모든 곳에 있는 모든 유대인의 최고의 소망은 성전 안뜰을 거닐며 유월절 제사를 드리고, 기도하며, 레위인 성가대의 찬양을 듣는 것이었습니다. 유대인은 고향을 떠나 헤매고 다니는 그 어는 곳에서도 자기들의 예루살렘과 같은 도시는 본적이 없습니다. 아시아의 안디옥도 아니고, 건축물의 웅장함으로 돋보이는 로마제국의 로마도 아닙니다. 고대든 현대든 그 성전과 같이 거룩한 건물이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유월절 저녁에 이 도시를 향해 붐비며, 찬양의 노래를 부르며 그렇게 기뻐하는 수십만 명의 축제 인파도 없었습니다. 유월절은 온 이스라엘에게 기쁨의 때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곳과 전 세계에서 온 절기 순례자들이 무리 지어 와 찬송시를 부르며 주님께서 그들에게 축복셨던 것처럼 번제와 화목제를 가져왔습니다. 그 누구도 주님 앞에 빈손으로 오지 않을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유월절마다 예루살렘 지역에 얼마나 많은 유대인이 있었는지 분명하게 알 방법은 없습니다. 요세푸스는 어떤 유월절에 잡은 양이 256,000 마리였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린양 한 마리에 최소한 열 명의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안다면 이 수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커 보입니다! 어쨌든 예루살렘과 그 근방은 전 세계에서 온 순례자들로 둘러 쌓였습니다. 이 순례자들 대부분은 예루살렘 밖에 진을 졌습니다. 이 지역의 모든 여관은 가득 찼습니다. 운 좋게 도시 안에 숙소를 잡을 수 있었던 사람들은 값을 지불하지 않고 숙소를 제공받았습니다. 대신 그들은 그들의 유월절 어린양의 가죽과 유월절 식사 때 사용한 그릇들을 남겨두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부모님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가셨습니다” (눅 2:41). 우리는 우리 주님이 친히 유월절을 지켜, 주님을 위해 집 주인이 준비하고 마련해 둔 다락방에서 최후의 만찬을 하셨다는 것을 압니다 (막 14:12-16).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에 가서 그냥 기도만 한 것은 아닙니다! 이 때는 아주 좋은 사업 기회이기도 했습니다. 전 세계에서 온 상인들이 향신료와 약초와 조미료를 내놓았습니다. 예루살렘은 언제나 번성하는 시장이었지만 유월절에는 특히 더 그랬습니다. 시장마다 순례자들로 붐볐습니다. 그러나 인파가 가장 많고 가장 난리 법석이 심한 곳은 양과 염소를 파는 가축 시장이었습니다. 로마 행정 장관이 일어날지도 모를 폭동에 대비하기 위해 유월절 몇 주 전에 가이사랴에서부터 예루살렘까지 가는 것은 관례였습니다. 그의 본부는 헤롯궁에 있었는데, 이곳은 실제로 탑과 성곽이 있는 벽으로 둘러싸인 요새였습니다.
유월절 준비 유월절 준비는 한 달 전인 아달월 15일에 시작되는데, 이 때 순례자들이 쓸 수 있도록 다리와 도로가 보수됩니다. 유월절 2주 전에 (오순절과 장막절 2주 전에도) 가축이 십일조로 드려졌고, 성전 헌금함이 대중에게 공개되면서 비워졌습니다. 우리는 요한복음 11:55에서 “유대인의 유월절이 가까우매 많은 사람이 자기를 성결하게 하기 위하여 유월절 전에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바울이 고린도전서 11:27-28에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피에 대하여 죄를 짓는 것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그 후에야 이 떡을 먹고 이 잔을 마실지니”라고 말했을 때 이 관습을 우리 주님의 만찬에 적용하고 있다고 믿습니다. 가정에서는 유월절을 위한 특별 준비가 니산월 13일 저녁에 시작됩니다. (하루는 언제나 저녁에서부터 저녁까지로 생각하므로, 이 날은 실제로 니산월 14일의 시작이었습니다.) 이 때 한 가정의 가장은 밀초의 불을 붙이고, 수저와 깃털 솔을 가져와 집에서 누룩을 세심히 찾아내고 없앱니다. 이렇게 누룩을 찾는 일은 완전히 침묵 가운데 행해집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 5:7 “너희는 누룩 없는 자인데 새 덩어리가 되기 위하여 묵은 누룩을 내버리라 우리의 유월절 양 곧 그리스도께서 희생되셨느니라”에서 이런 관습을 언급했습니다. 랍비 전통은 이 관습을 “그 때에 내[하나님]가 예루살렘에서 … 등불로 두루 찾아“라고 한 스바냐 1:12에 따라 예언적으로 해석합니다. 많은 유대인의 번역은 “촛불”이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다음 의제는 유월절 어린양 선택이었습니다. 이 어린양은 아무 흠이 없어야 하고 난지 최소 8일이 지나야 하고 1년이 넘지 않아야 합니다. 이것은 한 사람 혼자서 먹을 수 없었습니다. 한 그룹에 최소 열 명에서 스무 명이 넘지 않는 사람이 있어야 했습니다. 주님의 유월절 만찬에 참여한 그룹은 우리 주님과 그분의 제자들이었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나머지 제자들과 예루살렘 밖에서 지체하는 동안,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 유월절을 준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절기 순례자들의 행렬에 합류하기 전에 어디에서 어린양을 샀는지 모릅니다. 이 순례자들 어떤 이들은 제사에 바쳐질 양을 끌고 가고 있었고, 어떤 이들은 짊어지고 가고 있었습니다.
성전에서의 유월절 그 다음 세 무리의 예배자들 중 첫 무리가 제사장들의 뜰로 들어가는 것이 허락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등 뒤에서 거대한 문들이 닫히고 난 후, 레위인들이 나팔을 세 번 불고 제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이것은 인상적인 장면이었습니다. 제사장들은 두 줄로 서 있는데, 각 줄의 제사장들은 금대접과 은대접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이 어린양을 잡을 때 제사장이 그 피를 받아 동료에게 넘겨주고 빈 대접을 다시 받았습니다. 각 대접이 제단에 있는 제사장에게 가면 그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바닥에 쏟았습니다. 제사 내내 레위인 성가대가 사람들을 이끌어 시편 113편부터 118편까지 불렀습니다. 이것은 이집트 할렐 (할렐은 히브리어로 “찬양”이라는 뜻이고, 이집트라고 부르는 것은 첫 유월절에 이집트에서 구원받은 것을 가리키는 것입니다.)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시편들은 교창으로 불렀는데, 성가대가 첫 줄을 부르면 예배자들이 화답하는 것이었습니다. 시편 113편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성가대: “할렐루 야” 주를 찬양하라. 회중: “할렐루 야” 위의 것 반복. 성가대: “찬양하라, 오 주님의 종들아.” 회중: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라” 등등 이것은 할렐루야 합창이었습니다! 만약 한 무리의 제사가 끝나기 전에 할렐 전곡을 마치면 이 할렐은 재차, 심지어 삼차 반복되었습니다. 그런 다음 첫 무리가 물러가고 다음 무리가 들어왔습니다. 같은 의식이 반복되고, 그런 다음 마지막 무리를 위해 또 한 번 반복되었습니다. 이 마지막 무리는 “게으름뱅이”라고 불렀습니다. 모든 제사가 마무리되면, 향을 피우고, 밤새 켜둘 등잔을 다듬고, 제사장들은 성전 뜰을 청소했습니다. 예루살렘에 해가 지면, 수백 만의 유대인들은 가죽에 정성스럽게 싼 죽은 어린양을 지고 성전에서부터 길거리로 몰려나왔습니다. 어둠이 이 도시에 내려 앉자, 베드로와 요한은 집주인들이 휴대용 질화로인 유월절 화로에 불을 붙이고 있는 집들의 마당을 지나갔습니다. 그들은 화로 안에서 굽고 있는, 향긋한 석류나무 위에서 지글거리는 양고기 냄새를 맡을 수도 있습니다. 전 세계에서 온 친척들과 친구들의 함께 모였습니다. 부자들은 유월절을 기념하기 위해 가난한 사람들을 초대했는데, 그들은 모두 이집트에서 유월절 때 가난했기 때문입니다. 부자와 가난한 자, 노예든 자유자든, 노인과 어린아이들 모두 참여합니다. 예수님과 다른 열 제자들이 다시 한 번 감람산 너머 거룩한 도시로 내려온 것은 아마 해가 기울기 시작할 때였을 것입니다. 그들 앞에 축제 의상을 입은 예루살렘이 놓여있습니다. 주위 사방으로 순례자들이 예루살렘을 향해 서두르고 있습니다. 초봄의 밝은 꽃들로 화려하거나 밭과 올리브 농원의 짙은 잎사귀 사이로 나온 풀밭에 흰 텐트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었습니다. 순백색의 대리석과 금 위로 기울어져가는 햇살이 반사되어 눈이 부신 화려한 성전 건물에서는 번제단의 연기가 올라왔습니다. 이 뜰은 이제 문자 그대로 마지막으로 유월절 어린양을 제사하는 간절한 예배자들로 붐볐습니다. 거리는 낯선 사람들로 넘쳤을 것이고, 평평한 지붕은 구경에 열중하는 사람들로 뒤덮였을 것입니다. 이들은 그렇게도 자주 고대해온 이 신성한 도시의 광경을 처음 보면서 눈요기를 하거나 아니면 잘 기억하고 있는 인근을 둘러보며 다시 한 번 기뻐했습니다. 이것은 주님께서 부활하시기 전까지 마지막 날 이 거룩한 도시를 보신 광경입니다! 주님에 대한 배신의 밤이 깊어가는 가운데, 주님은 보름달의 희미한 빛 가운데 다시 한 번 이 도시를 보셨습니다. 주님은 예루살렘에서 “그분의 죽음을 성취하러”, 원형과 예언을 성취하기 위해, 자신을 진정한 유월절 양,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바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갈 것이었습니다. 우리 주님의 공생애 기간 동안, 손님들이 유월절 식탁 주위에 모일 때, 그들은 더 이상 이집트의 유월절 때 그랬던 것처럼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 신을 신고 손에 지팡이를 잡고 나오지 않았습니다. 반대로 그들은 유월절에 왕의 자녀로서 그들의 명절 의상을 입었습니다. 가장 오래된 유대인의 법령기록인 미쉬나에는 유월절 만찬이 원래 아주 단순합니다. 바울의 스승이었던 가말리엘은 “누구든 유월절에 세 가지를 설명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에게 지워진 의무를 다하지 않은 것이다. 이 세 가지는 유월절 어린양, 무교병, 쓴 나물이다. 유월절 어린양은 하나님께서 이집트에서 우리 조상들의 집에 피가 뿌려진 곳을 넘어가셨음을 뜻하는 것이며, 무교병은 우리 조상들이 이집트에서 (서둘러) 구원받았음을 뜻하는 것이고, 쓴 나물은 이집트 사람들이 이집트에서 우리 조상들의 삶을 고되게 만들었음을 뜻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페삭 10:15). 함께 한 무리 중 각 사람에게 포도주 한 잔을 따라 주었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 주님은 “감사기도를 드리셨습니다.” 이 감사 기도를 위한 랍비들의 문구는 이랬습니다: 찬송하리로다, 주 우리 하나님, 포도 열매를 만드셨음이여! 찬송하리로다, 주 우리 하나님, 온우주의 왕, 모든 민족 중에서 우리를 택하시고, 모든 방언 가운데서 우리를 높이시고, 주의 계명으로 우리를 거룩하게 하셨음이여! 오 주 우리 하나님, 주께서 사랑 가운데 우리에게 기뻐할 엄숙한 날들과 기뻐할 절기와 계절을 주시고, 오늘 무교절의 날, 우리 자유의 계절, 거룩한 성회, 우리가 이집트에서 떠나왔음을 기념하는 날을 주셨습니다. 그런 다음 포도주 첫 잔을 마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이것을 갖다가 너희끼리 나누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이제부터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때까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눅 22:17-18)고 말씀하신 것은 이 첫 잔 때였습니다. 첫 잔 후에, 각 사람은 손을 씻었습니다. 관례적인 손 씻는 기도는 “찬송하리로다, 오 주 우리 하나님, 우리를 주님의 계명으로 거룩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손 씻음에 대하여 명하셨음이여”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자리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가져다가 허리에 두르신” (요 13:4) 것은 분명히 이 때였습니다. 그 다음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고 말려주셨습니다. 그 다음 쓴 나물들과 무교병과 하로셋과, 하기가 고기를 들여왔습니다. 어떤 출처에 따르면, 하로셋은 식초와 물이고, 다른 곳에서는 이것이 점토나 모르타르 같은 농도가 될 때까지 으깬, 식초, 무화과, 아몬드, 대추야자, 향신료들을 섞은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이집트의 감독자들로 말미암아 종 살이 할 때 그들의 노역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기가는 유월절과 다른 절기에 특별히 자원하여 드리는 화목제였습니다. 이 후에 우리 주님께서는 손으로 쓴 나물 조금을 들어 그것을 하로셋에 찍으시고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 작은 조각을 드시고, 만찬에 참여한 각 사람에게 비슷하게 주셨습니다. 만찬에 참여한 사람은 주님과 함께 관습에 따라 식탁 둘레에 있는 긴 의자에 비스듬히 기댔습니다. 이렇게 우리 주님께서는 주님 옆자리에서 비스듬히 기대어 있는 요한에게 “내가 떡 한 조각을 적셔다 주는 자가 그니라”고 하시며 누가 그분을 배신할 것인지를 말씀하셨습니다. 그 다음 무교병과 인도자 앞에 놓여있는 유월절 어린양을 돌렸습니다. 두 번째 포도주를 따라 마신 후, “이 후에 너희의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에게 재앙을 내리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는 출애굽기 12:26-27에 따라 이 절기에 대해 설명했습니다. 그런 다음 할렐 (찬송 시편)의 첫 부분 (시편 113, 114편)을 노래했습니다. 그리고 축사가 이어졌습니다. 할렐 후에 무교병과 하로셋을 찍은 쓴 나물을 먹었습니다. 그 다음 하기가 고기를 먹고, 그 후에 유월절 어린양을 먹었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잔에 포도주를 따라 마시는데, 이 세 번째 포도주 잔을 마시는 것은 유월절 어린양을 먹은 다음 이었습니다. 이 잔이 우리 주님께서 그분의 만찬과 연관시킨 잔이었습니다. 랍비의 글들에서는 이것을 “축복의 잔”이라고 불렀습니다 (고전 10:16). 이 후에 그들은 네 번째 잔을 마신 다음 할렐의 나머지를 불렀습니다. 이것은 시편 115편부터 118편까지 입니다. 이것은 마가복음 14:22-26에서 언급된 찬미였습니다: 그들이 먹을 때에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며 이르시되 받으라 이것은 내 몸이니라 하시고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그들에게 주시니 다 이를 마시매 이르시되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니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가 포도나무에서 난 것을 하나님 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 산으로 가니라 우리 주님께서 부르신 찬미에는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시 116:3)라는 가사가 있었습니다. 이 찬미로 유월절 예배를 마감하시고, 우리 주님께서는 그 제자들을 감람산으로 인도해 가셨습니다.
유월절: 그것의 새로운 언약의 성취
곧 우리 주님께서는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 (히 5:7)을 올려드릴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창세 전부터 미리 선택되고 …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벧전 1:19-20) 이 선별되고 자원하셨습니다. 몇 시간 안에 주님은 “우리 죄를 위한,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한 화목 제물” (요일 2:2)이 될 것이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