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년법과 예수 그리스도* 1. 희년법이란? 2. 희년법의 근거 3. 예수님의 희년 선포 4. 토지 무르기 5. 희년법과 3대 절기 6. 기업 무를 자 예수 그리스도 |
1. 희년법이란? “너는 일곱 안식년을 계수할지니 이는 칠년이 일곱 번인즉 안식년 일곱 번 동안 곧 사십 구년이라 칠월 십일은 속죄일이니 너는 나팔소리를 내되 전국에서 나팔을 크게 불지며 제 오십년을 거룩하게 하여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레 25:8~10) 희년은 매 50년마다 돌아온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혁명적인 시간이며, 전혀 새로운 질서가 전개된다. 왜냐하면 희년의 3대 축복 사건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그때에는 희년의 나팔 소리와 함께 모든 노예들은 자동적으로 해방되었으며, 모든 빚은 자동적으로 탕감되었고, 모든 땅들은 자동적으로 본래의 주인에게 되돌려졌다. 희년의 3대 사건은 노예해방(Emancipation), 부채탕감(Remission), 토지반환(Restoration)이다. 희년이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지는 현장에서 우리는 희비쌍곡선을 보게 된다. 부자들에게는 비극이요 가난한 자들에게는 희극이다. 부자들은 기득권 소유권 채권 등을 포기해야 하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다시금 자기의 독립적인 신분과 조상의 기업을 값없이 자동적으로 회복하게 된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도 같은 상황이 전개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환희와 핍박이 동시에 공존하기 때문이다. 희년법 본문에서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감”이란 토지반환을 기초하여 진행되었다.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감”이란 노예해방과 부채탕감이 전제조건이다. 그런데 저들은 왜 노예가 되었으며 빚진 자가 되었고 땅을 빼앗긴 자가 되었는가?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에 들어와 공평하게 제비를 뽑아 기업(땅)을 분배 받았다. 그러나 인간의 생존 상황이란 언제나 그러하듯이 예측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조건으로 인하여 가난한 사람들이 늘 존재하게 된다(신 15:11). 2. 희년법의 근거 구약의 기업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약속한 가나안 땅을 가리킨다(창 15:7). 여호수아 시대에 가나안 땅을 영원한 기업으로 나누어 주셨다.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었음을 확
* 이 글은 KIBI(한·이 성경연구소) 대표인 송만석 장로님의 “희년법과 예슈아” 특강을(2011.3.29 이스라엘 선교의 밤) 정리한 것입니다. 정한 것이며, 언약의 성취로서 주어진 것이다. 가나안 땅은 삶의 터전이며 경작지로서 각자가 제비 뽑아 기업으로 받은 것이다. 제비뽑기는 이스라엘 온 회중이 모여 성막 문 앞에서 매우 엄숙하고 질서정연하게 거행되었는데, 여호수아 13~21장까지의 기업 분배 기록은 영적인 면에서나 실제적인 면에서 이스라엘에게는 매우 중요한 문서가 된다. 레위기 토지제도의 근거는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 그 땅을 정복하였다는 사실과 후손들에게 영속적으로 물려줄 수 있도록 영원한 기업으로서 가나안 땅을 제비뽑아 나누어 가졌다는 사실에 두고 있다. 성경에 나오는 단어들인 분깃(lot), 줄 띈 것(line), 재산과 소유(possession)란 말들은 모두 기업이라는 개념에서 유래한다. 한편 은혜(grace), 자유(freedom), 속량(redemption)이라는 낱말들은 신약의 핵심적인 단어들인데, 모두 구약의 토지법과 기업이라는 개념에서 나온 말임을 기억해야 한다. 그러므로 신약을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하여 구약의 토지법 연구가 필수적인 과제로 등장한다. 기업은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절대적이고 신성한 것이었다. 그러므로 나봇은 그것을 지키기 위하여 아합 왕에게 포도원을 내어주지 않았으며, 왕도 그 토지 매각을 강요할 수 없었다.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 아래와 자기 무화과나무 아래 앉을 것이라 그들을 두렵게 할 자가 없으리니 이는 만군의 여화와의 입이 이같이 말씀하셨음이니라.” (미 4:4) “솔로몬의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서 안연히 살았더라.” (왕상 4:25) 이스라엘의 각 가정이 자기의 토지(기업)를 소유하고 누구에게도 방해받는 일이 없이 자기 땅을 경작할 수 있는 상태를 사회적 이상으로 간주하였다. 솔로몬 시대는 이스라엘 황금시대의 모형이었다. 각 사람이 자기 포도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둘러앉은 상황은 분명히 경제적 곤궁에 매여 있던 가난한 자들이 각자 자기의 기업으로 돌아가서 가족과 함께 둘러앉은 희년의 상황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희년이 도래하면 제사장은 수양의 뿔로 만든 양각 나팔을 불어서 전국 거민에게 자유를 공포하게 되므로 희년을 나팔의 해(The Year of Trumpet) 또는 자유의 해(The year of Liberty)라 부른다. 희년에 해당하는 Jubilee는 히브리어 요벨(Yobel)을 음역한 것이며, 수양의 뿔(Ram's Horn), 즉 양각을 지칭하는 말이다. 세 가지 종류의 기업: 생명 기업, 토지 기업, 관계 기업 하나님은 우리에게 기업을 주신다. 상속자로 삼으신다는 말이기도 하다. 우리에게 기업을 은혜로 주실 뿐 아니라, 받은 기업을 보전하고 지켜야 한다고 엄중히 요청하신다. 생명의 기업을 주시고 그것을 지켜야 함을 말씀하셨는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는 창세기 1:28의 말씀이 그것이다. 한편 토지 기업을 주시고 그것을 지키는 것을 사명으로 주시면서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말씀하셨다(창 1:28). 이 사실을 창세기 2:15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라고 하였다. 기업을 주셨다는 말씀 안에 이미 기업을 지켜야 한다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기업이란 조상으로부터 물려받은 재산이나 직업을 말한다. 여기서 ‘재산’이란 물려받은 기업을, ‘직업’이란 그 물려받은 재산을 지키는 활동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에게 생명의 기업을 주시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사명과 토지 기업을 주시고 그것을 지켜야 한다는 직업을 주시는 것으로 끝낼 수 없었다. 여기에 더하여 주인과 청지기라는 분명한 관계를 확인하고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는 또 하나의 기업을 주셨으니, ‘관계 기업’이 그것이다.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관계, 주인과 청지기라는 관계, 기업을 주는 자와 받는 자라는 관계, 그리고 절대 주권자와 동산 청지기라는 관계이다. 창 2:16-17에 보면,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의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선포하셨다. 하나님은 관계를 창조하여 그것을 기업으로 아담에게 주셨다. 너와 나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하여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었다. 그것은 절대 주권자와 동산 청지기라는 관계 속에서 자신의 주제를 파악하고 자기의 위치와 자리를 지켜야 한다는 상징적 표현이었다. 관계 기업을 지키기 위해서는 ‘선악과를 따먹지 않고 있는 그대로 두는 것’이 필수조건이며, 또한 그것이 관계 기업을 지키는 적극적 행위였다. 아담에게 있어서는 기업을 지키는 생활이 곧 신앙생활이었다. 생명의 기업을 지키는 일은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해지는 것이다. 토지 기업을 지키는 일은 땅을 정복하고 다스리며 관리하는 것이다. 하나님은 아담에게 생명의 기업을 이어 나가도록 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셨다. 그리고 토지 기업을 관리할 수 있도록 각종 들짐승들의 이름을 짓는 권세를 주셨다. 기업의 상실 아담이 자기의 기업을 지키고 있는 한, 에덴동산은 평화와 안식이 있는 낙원의 땅이었다. 그러나 아담은 기업을 상실했다. 배후에 그 기업을 빼앗으려는 자가 있었으니 곧 마귀다.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이다(요 10:10). 마귀는 아담에게 창조주와 피조물의 ‘종속 관계’를 깨뜨려버리고 하나님과 같이 되어보지 않겠냐고 유혹했다. 하나님과 아답 사이의 관계 기업에 도전장을 내민 것이다. 이것은 전쟁이다. 온 인류가 아담의 허리 안에서 마귀와 전쟁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는 이 전쟁에서 패배자가 되었다. 진 자는 이긴 자에게 배상금을 지불해야 한다. 지불하지 못하면 이긴 자의 종이 되며, 동시에 토지를 빼앗겨야 한다. 이 원리는 만고불변의 진리이다. 아담이 전쟁의 패배자로서 마귀의 종이 됨으로 생명의 기업을 상실했다. 노예의 생명은 주인에게 달려있기 때문이다. 또한 아담은 승리자 마귀에게 토지 기업을 몰수당할 수밖에 없었다. 토지 기업의 상실은 배상금을 지불하지 못한 아담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배상금이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율법에 근거하여 마귀가 청구하는 빚 문서에 적혀 있는 금액이다. 아담은 죽음을 지불해야 한다는 빚을 지고 있는 것이다. 마귀와 아담 사이에 작성된 이 노예 문서에는 채권자와 채무자가 규정되어 있으며 채무의 내용을 기록해 놓고 있다. 즉 노예 문서와 토지 문서는 마귀가 작성하고 인간이 서명한 노예 문서로서, 마귀가 주인이고 인간은 노예라는 주인과 종의 관계의 기록이다. 거기에는 마귀가 지주이고 인간은 소작인이라는 관계가 규정되어 있다. 창세기에는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쫓겨나 저주 받은 땅에서 종신토록 수고하면서 얼굴에 땀을 흘려야 땅의 소산을 겨우 얻을 수 있게 되었다고 기록해 놓았다. 기업을 상실한 인간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상태” “타락한 자가 되었다” “죄인이 되었다” “가난한 자가 되었다” “소망이 없는 자가 되었다” 등 다양하게 말해주고 있다. 기업의 회복을 위한 투쟁 아담 이래로 기업의 회복을 위한 투쟁이 시작되었다. 인간은 하나님 없이 스스로 기업을 회복하고 확보하기 위해 끝없는 생존의 투쟁을 벌이고 있다. 기업을 상실하기 전까지 인간에게는 소유권의 개념이 없었다. 오직 사용권의 개념이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소유권과 재산권 그리고 기득권의 확보를 위한 경쟁이 벌어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된 것이다. 첫 번째 투쟁은 토지 확보를 위한 것이다. 땅에서 생산되는 식물을 먹고 땅 위에 집을 짓고 살아야 하기 때문이다. 땅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미래에도 변함없이 재산권 확보의 일차적인 관심일 것이다. 두 번째 투쟁은 노예 확보를 위한 것이다. 땅이 아무리 많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생산과 연결시킬 수 있는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소나 말은 노동력을 제공한다는 면에서 중요한 재산으로 간주되었다. 자식이나 아내도 노동력을 가진 재산으로 간주되었다. 세 번째 투쟁은 무형의 재산을 확보하기 위한 것이다. 기술을 배운다든가 신용을 쌓는 일, 또는 명예를 얻거나 자본을 축적하는 일 등은 모두 무형의 재산이 된다. 무형의 재산들은 모두 채권에 해당되는 것으로 재산권의 일종이다. 무형의 재산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일종의 채권 확보라고 볼 수 있다 재산과 소유권을 확보하려는 노력은 인간의 가장 깊은 집단 무의식 속에 존재하는 것으로, 기업을 상실한 인간이 스스로 기업을 회복하려는 본능적 충동에서 나온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메시아를 기다리는 신앙 기업을 상실하고 빚진 자가 되어 땅을 빼앗기고 몸이 팔려 노예가 된 절망적인 인간에게 기업을 회복시켜 주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계획을 세우셨으니 그것이 구속사의 내용이 되었다.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구원의 약속을 주셨다. 메시야를 보내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신 것이다. 메시야를 통하여 우리가 받았던 영광스러운 기업을 다시 회복시켜 주시려는 계획을 세우셨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따라 그의 방법과 그의 시간표에 의한 것이었다. 그런 점에서 구약의 신앙은 기다림의 신앙이다. 메시아 대망사상이 구약의 줄기다. 창세기-> ‘여인의 후손’ / 출애굽기-> ‘유월절의 어린양’ / 레위기-> ‘희생제물’ 민수기-> ‘므리바의 반석’ / 신명기-> ‘나와 같은 선지자’ / 여호수아-> ‘여호와의 군대장관’ 사사기-> ‘한 구원자’ 메시아를 기다리는 신앙은 다르게 말하면 상실했던 기업이 회복되었다는 기쁜 소식, 즉 복음을 기다리는 신앙이다. 그것은 또한 희년의 선포를 기다리는 신앙이다. 왜냐하면 희년이 선포되면 상실했던 기업을 값없이 다시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구약의 신앙은 희년 선포의 때를 기다리는 신앙이었다. 3. 예수님의 희년 선포 예수님이 전하신 최초의 복음 선포는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말씀이었다(막 1:15). 여기서 때란 상실했던 기업을 되찾을 때요, 희년 선포의 때를 말하고 있다. 예수님의 공생애는 나사렛 회당에서 “주의 은혜의 해”를 선포하는 것으로 시작된다. 메시아로 취임하시는 예수님은 나사렛 회당에서 자기가 온 것은 주의 은혜의 해(희년)를 선포하기 위함이라고 분명히 밝히셨다. 뿐만 아니라 “이 글이 오늘날 너희 귀에 응하였느니라”고 하셨다.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눅 4:18~19) 상실했던 기업이 이제 회복되었음을 선포하셨다. 이스라엘이 그토록 기다려왔던 희년의 선포, 온 인류가 죄악 중에 죽어가면서 그렇게 필요했던 복음 선포를 하신 것이다. 예수님의 사명이 무엇인지에 관해서 예수님 자신이 내린 가장 놀랍고 명백한 정의는 그의 고향 나사렛 마을에서 행한 최초의 강해설교 ‘나사렛 선언’에 잘 나타나 있다. 예수님은 이사야 61:1~2을 인용하시면서 자기가 온 것은 주의 은혜의 해(희년)를 선포하기 위함임을 분명히 하셨다. 희년 선포와 복음 선포는 같은 것이다. 예수님은 나사렛 선언에서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하여” 오셨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시고 있다. 가난한 자에게 기쁨의 좋은 소식을 선포한다는 차원에서 희년의 선포와 복음 선포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성경에 등장하고 있다. 희년의 사건과 복음 사건 사이의 모형학적인 상관성 구약-> 복음 선포의 모형으로 희년을 선포 신약-> 희년 선포의 원형으로 복음을 선포 복음 선포 | 희년 선포 | 해방 (deliverance) | 노예 해방 | 속죄 (redemption) | 부채 탕감 | 구원 (salvation) | 토지 반환 |
구원(salvation)이란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 어원의 본래적 의미는 ‘기업의 회복’이다. 그것은 신분상의 구원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공간적인 개념으로서의 구원을 말한다. 토지 반환의 개념과 직결된다. 구원의 어원학적인 뿌리(root meaning)는 ‘공간으로서의 삶의 터전을 회복하는 것’을 뜻하고 있다. 그것은 전쟁 중에 승리를 통하여 토지 공간을 확보한 상황을 의미하는 단어인 것이다. 구약에서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땅을 확보하였다는 말이다. 구원자(savior)란 적의 공격으로부터 땅을 지키고 확대시킨 사람을 지칭하는 단어로 되어 있다(삼하 8:14; 삿 2:18). 나사렛 선언의 내용과 희년의 3대 사건은 자연스러운 평행 관계를 이룬다. 첫째 “포로 된 자에게 자유”란 노예 해방을 말하며, 둘째 “눌린 자를 자유케 함”이란 부채 탕감을 의미하며, 셋째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이란 토지 반환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자기의 오신 목적을 말씀하시면서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고 하셨다(요 9:39). 그렇다면 생명의 빛이며 세상의 빛이신 예수께서 그 빛으로 무엇을 볼 수 있도록 하시는가? 그것은 바로 공간적인 하나님의 나라이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 여기서 하나님의 나라란 어떠한 곳인가? 그 곳은 다름 아닌 ‘희년이 선포된 나라’를 말한다. 구원이란, 희년이 선포된 나라를 바라보고 그리로 들어가서 자기 기업의 땅과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말한다. 희년법에서 말하는 토지 반환의 개념과 동일하다. 즉 죄를 용서받고 영생을 얻는 시간적 신분적인 구원이 아니라 기업을 상속받고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토지 공간을 확보하는 것임을 성경은 말하고 있다. 복음(Gospel) | 희년 | 나사렛 선언 | 해방(자유, deliverance) | 노예 해방 | 포로 된 자에게 자유 | 속죄(칭의, redemption) | 부채 탕감 | 눌린 자를 자유케 함 | 구원(기업, salvation) | 토지 반환 |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 |
4. 토지 무르기 일반적으로 ‘무르기’란 샀던 물건을 도로 주고 돈을 찾는 것을 말한다. 그러나 토지 무르기에서 무르기란 전당포의 경우와 같이 담보물로 저당 잡혔던 물건을 반환하기 위하여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되돌려 찾는 것을 의미한다. 구약에서 ‘토지 무르기’(redemption of the land) 율법으로 보장된 제도로서 부채를 지불하고 나서 토지 기업을 반환받는 것이다. 즉 토지를 저당 잡히면서 사용권을 양도했던 토지를 값을 치르고 되돌려 찾는 일이다. 한편, 나 자신이 토지 무르기를 수행할 능력이 없을 때 친척 중에 한 사람이 그 일을 대신할 수 있다는 것을 성경에서는 율법으로 보장하고 있다. 나를 대신하여 토지 무르기를 집행하는 근족을 ‘기업 무를 자(kinsman-redeemer)’라고 한다. 히브리어로 고엘(goel)은 룻기에서 ‘기업 무를 자’로, 다른 곳에서는 ‘구속자’로 번역되어 있다. “토지를 영영히 팔지 말 것은 토지는 다 내 것임이라 너희는 나그네요 우거하는 자로서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너희 기업의 온 땅에서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 만일 너희 형제가 가난하여 그 기업 얼마를 팔았으면 그 근족이 와서 동족의 판 것을 무를 것이요.” (레25:23~25) “토지 무르기를 허락할지니”라는 표현은 우리말에서 그 강도가 매우 약하게 번역되어 있다. 원어적으로는 반드시(must) 허락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즉 토지 무르기가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임을 밝히고 있다. 동시에 팔다(sell)라는 단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구약성경에서는 ‘임대하다’(lease) 또는 ‘세놓다’(rent)라는 낱말이 따로 나오지 않으며 그런 의미는 팔다(sell)라는 단어 속에 포함되어 있다. 따라서 이스라엘에서 땅을 판다는 말은 희년이 돌아올 때까지 그 토지의 사용권을 임대해 준다는 말이다. 토지의 사용권과 소유권이 철저히 분리되어 있다. 토지 소유권을 양도한 상태, 즉 땅을 팔고 그 토지 문서가 타인에게 넘어간 상태에서 기업 무를 자의 출현은 참으로 기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그는 나를 대신하여 땅 값을 치러주고, 그 땅의 소유권과 사용권이 나에게 다시 되돌아오게 해 주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업 무를 자의 등장은 가난하게 되어 땅을 팔아버린 자에게 있어서는 희년의 양각 나팔소리와 동일한 효과를 가져 오는 것이다. 기업 무를 자의 출현은 지금 여기에서 희년을 맞이하게 되는 기쁨의 상황을 동반한다. 희년이 돌아올 때까지 오래 기다릴 필요 없이 희년을 ‘현재화’시키는 사람이 기업 무를 자인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기업 무를 자는 희년을 선포하는 사람이며, 동시에 지금 여기서 나에게 희년의 복된 소식을 가져오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 인간은 아담 안에서 죄인(빚진 자)이 되어 마귀에게 땅을 팔아버린(빼앗겨버린) 상태에 있었는데, 우리의 근족 되시는 그리스도께서 기업 무를 자로 오셔서 우리를 대신하여 땅 값을 다 치르고 희년을 현재화시킨, 곧 희년을 선포하신 분이라는 것을 성경은 밝히 증거하고 있다. 그리스도는 기업 무를 자로서, 우리의 부채(죄 값, 죽음)를 대신 지불함으로 부채를 탕감해 주시고, 노예 상태에 있는 우리에게 해방을 선포하시며, 토지 기업을 회복시켜 주셨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복음의 핵심적 내용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는 복음은 희년의 복음이다. 토지 문서의 이동 상황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을 때 토지의 소유권과 그 문서는 성부 하나님께 있었다. 그런데 아담을 지으시고 그에게 복을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하셨을 때, 그 토지 소유권과 토지 문서는 아담에게 넘겨주신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아담에게 넘겨주면서 하나님께서는 한 가지 조건을 첨부하셨다. 즉 값을 요구하셨다.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가라사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 하시니라.” (창 2:15~17) 한 가지 조건이란 분양된 토지의 가격에 해당하는 값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값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이다. 따라서 아담이 그 실과를 먹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고 있는 동안에는 그 값을 계속 치르고 있는 상태이다. 그 조건이 충족되고 있는 동안 그곳에는 평화가 있었다. 그런데 사탄이 에덴동산을 관리하던 아담에게 뱀의 모양으로 찾아와 선악과를 먹어보라고 유혹했다. 그리자 아담은 하나님 같이 되어 보려는 욕망으로 그것을 먹음으로써 값을 지불하지 못한 자, 곧 빚진 자가 되었다. 이제 그는 토지 문서를 반납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토지의 값을 지불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죄의 값은 사망이기에 아담은 정녕 죽어야 했다. 빚을 독촉하는 마귀 앞에서 아담은 빚을 청산하기 위하여 ‘즉각적인 죽음’이라는 값을 지불하든지, 아니면 마귀에게 몸이 팔려 노예의 신분으로 생명을 유지하든지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는 기로에 서게 되었다. 이때 아담은 죽는 것이 두려워 마귀에게 종노릇 하더라도 즉각적인 죽음보다는 조금이라도 더 사는게 낫다고 생각하여 생명을 연장시키는 쪽으로 결단하고 에덴동산을 나와서(쫓겨나서) 토지를 갈게 되었다. 저주 받은 땅을 갈게 되었다는 것은 땅에 묶인 자가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동시에 마귀에게 노예가 되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었고, 아담이 그 얼굴에서 땀이 흘러야 식물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 아담이 땅에 묶이고 마귀에게 노예가 되었다는 것을 반증한다.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 된다는 말씀에 따라(벧후 2:19), 아담은 마귀에게 져서 그 육체가 마귀의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다. 땅 문서를 마귀에게 내어주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는 아담의 모습이 창세기 3:23~24에서 처절하게 묘사되어 있다. 아담은 토지 문서의 계약을 파기한 책임을 지고 땅 문서를 빼앗기게 되었다. 아담이 소유하였던 토지 문서의 원본은 마귀에게 넘어갔다. 마귀는 그 토지 문서에 내용 증명서를 첨부하여 소유권을 확인하는 절차를 밟았다. 원본은 인봉되어 하나님께 돌아갔고, 인봉되지 않은 사본은 마귀가 소유함으로 아담은 합법적인 절차에 의하여 빚을 갚지 못한 채무자로서 마귀의 노예가 되었으며 토지를 팔아버린(빼앗긴) 자가 되었다. 그렇게 인간은 마귀의 노예가 되었다. 빚진 자가 되었다. 땅을 빼앗겨버린 자가 되었다. 다시 말하면 아담 안에서(in Adam) 모든 인간은 가난한 자가 되었다. 성경에 나오는 가난한 자라는 의미의 뿌리가 여기에 있음을 간과하지 말아야 한다. “마귀가 또 예수를 이끌고 올라가서 순식간에 천하만국을 보이며 가로되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내가 네게 주리라. 이것은 내게 넘겨준 것이므로 나의 원하는 자에게 주노라 그러므로 네가 만일 내게 절하면 다 네 것이 되리라.” (눅 4:5~7) 빼앗긴 토지 회복하기 아담 안에 있는 모든 인간들의 무의식 속에는 자기 영토(토지)를 회복하여 확보하려는 뜨거운 열망이 불타고 있다. 그러나 합법적으로 다시 되돌려 받기 위한 전제 조건은 마귀와 싸워 이기고 정복하는 일이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우리를 대신해서 그 일을 하신 것이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요 16:33) “이제 이 세상의 심판이 이르렀으니 이 세상 임금이 쫓겨나리라.”(요 12:31) “십자가로 승리 하셨느니라.”(골 2:15) 이 구절들은 예수님이 토지 문서를 소유하고 있던 마귀와 싸워 이긴 사실을 반복하여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은 자기의 백성이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빚에 쪼들리다가 사단의 노예가 된 상황을 해결하고 구원하시기 위하여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기업 무를 자로 보내셔서 십자가에서 사망의 빚을 대신 청산하게 하시고, 무덤에 장사된 지 3일 만에 다시 부활하셔서 희년을 선포하심으로 자기 백성이 본래의 기업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하셨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나에게 주셨으니.” (마 28:18) 마귀에게 있던 토지 소유권과 그 문서가 자기에게 완전히 ‘이동’되었음을 밝히는 말씀이다. 그 사실을 선포하심이 복음의 선포이며 희년의 선포였다. 희년법의 핵심은 ‘거저 주는’ 것에 있다. 희년을 맞이하는 각 사람은 빚을 탕감 받고 노예 신분에서 해방되어 자기의 가족에게로 자기의 기업으로 돌아가는 축복을 ‘은혜로 값없이’ 받는 것이다. “주 여호와의 신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실 것이니라.” (사 61:1~3) 예수님은 이 예언의 말씀을 인용하시면서, 자기의 사명이 희년을 선포하기 위한 것임을 확인하신 후에 바로 그 예언의 말씀이 지금 여기에서(Here and Now) 이루어졌다고 선포하셨다. 즉 이 성경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눅 4:21). 토지 문서의 이중 처리와 그 필요성 그렇다면 우리가 그 반환 받은 땅에서 아직도 완전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지 못하고 있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그것은 마귀가 토지 소유권을 박탈당하였음에 불구하고 여전히 그 사용권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토지 소유권이 무효화된 사실을 숨기면서 계속적으로 사용권을 주장하고 있다는 의미이다. 마귀는 처음부터 거짓말쟁이였으며 속이는 자였다(요 8:44). 이러한 상황은 마귀가 그의 ‘권세’를 빼앗겼지 ‘능력’을 빼앗긴 것은 아니라는 말로 설명할 수 있다. 권세와 능력의 차이는 무엇인가? 경찰이 대형 트럭을 세울 수 있는 것은 정부로부터 받은 ‘권세’ 때문이다. 그러나 트럭을 달리게 하는 것은 엔진 자체의 ‘능력’ 때문이다. 또한 희년의 선포와 완성 사이에 시간적인 간격이 있는 것은 마치 사형선고와 사형집행 사이에 시간적인 간격이 존재함과 같은 원리이며, 대통령 선거에서 승리가 확정되었지만 아직은 취임하지 못한 상태의 과도기적 시간이 존재하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구원의 행진에서 칭의(justification)와 영화(glorification) 사이에 성화(sanctification)라는 중간 과정이 있는 것은 하나님의 오묘하신 섭리이다. 즉 새 시대와 새로운 신분에 적응하기 위한 훈련이 요구되기 때문에 과도기적 기간을 두었다고도 할 수 있다. 동일한 맥락에서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의 관계를 희년의 선포와 완성의 관계로 구조화시켜 놓을 수 있다. 희년법은 희년의 선포와 완성이라는 이중 성취를 말하고 있는데, 이러한 모습은 토지 무르기의 이중 성취에서 그 모형을 찾아볼 수 있다. “예레미야가 가로되 여호와의 말씀이 내게 임하였느니라. 이르시기를, 보라 네 숙부 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네게 와서 말하기를 아나돗에 있는 내 밭을 사라. 이 기업을 무를 권리가 네게 있느니라 하리라 하시더니, 여호와의 말씀같이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이 시위대 뜰 안 내게로 와서 이르되, 청하노니 너는 베냐민 땅 아나돗에 있는 나의 밭을 사라. 기업의 상속권이 네게 있고 무를 권리가 네게 있으니 너를 위하여 사라 하는지라. 내가 이것이 여호와의 말씀인 줄 알았으므로 내 숙부의 아들 하나멜의 아나돗에 있는 밭을 사는데 은 십칠 세겔을 달아주되 증서를 써서 인봉하고 증인을 세우고 은을 저울에 달아주고, 법과 규례대로 인봉하고 인봉치 아니한 매매증서를 내가 취하여 나의 숙부의 아들 하나멜과 매매증서에 인친 증인의 앞과 시위대 뜰에 앉은 유다 모든 사람 앞에서 그 매매증서를 마세야의 손자 네리야의 아들 바룩에게 부치며 그들의 앞에서 바룩에게 명하여 이르되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너는 이 증서 곧 인봉하고 인봉치 않은 매매증서를 취하여 토기에 담아 많은 날 동안 보존케 하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 내가 이같이 말하노라. 사람이 이 땅에서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사게 되리라 하셨다 하니라.” (렘 32:6~15) 이것은 예레미야가 하나멜의 밭을 샀다는 증서 두 장을 써서 하나는 인봉하고 다른 하나는 인봉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인봉한 것(the sealed copy)은 누구든지 그 내용에 손대지 못하도록 영구 보전하기 위한 것이며, 인봉하지 아니한 것(the unsealed copy)은 누구에게나 보이기 위해 문서로 작성된 것이다. 이는 당시 통용되던 토지매매의 법과 규례를 따른 것이다. 인봉된 계약서는 영구 보존용으로 예루살렘 성전 창고에 보관했다. 그 토지 문서는 여호와께서 나누어주신 신성한 토지 기업을 기록한 내용이기 때문에 중요하게 취급했다. 반면 인봉치 않은 토지 문서 즉 개봉된 계약서는 땅을 매입한 사람의 소유로서 매입자의 소유권을 명시하고 보장해주는 것이며, 누구나 열람할 수 있도록 되어 있는 공개적인 토지 문서였다. 그래서 ‘이중 처리’가 요구된다. 마찬가지로 토지 무르기에도 이중 처리가 요구된다. 첫 단계로, 근족을 위하여 땅값을 대신 치러주고 나서 인봉치 아니한 증서(the unsealed copy)를 받아내어 즉시 무효화시켜 버린다. 두 번째 단계로, 인봉한 매매증서를 성전 창고에서 찾아내어 제사장과 증인들 앞에서 인봉을 떼고 확인한 다음에 그것을 소각시켜야 한다. 완전히 소각시켜야 토지 무르기가 완결된다. 두 단계인 ‘무효화’와 ‘소각’ 사이에는 불가피하게 시간적 간격이 발생한다. 개봉된 증서는 땅 값을 지불하고 나면 언제든지 무효화가 가능하다. 그러나 인봉된 증서는 성전 창고에 보관되어 있고 지정된 날짜와 시간에만 그 처리가 가능하기 때문에 소각까지는 일정한 시간이 요구된다. 이는 초림과 재림의 시간적 간격을 예표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겠다. • 메시야의 초림 사역: 사단의 손에 있던 토지 문서의 무효화 작업 • 메시야의 재림 사역: 하나님의 손에 있던 증서의 인봉을 떼고 소각시키는 작업 토지 문서 무효화의 절차 십자가상의 칠언 중에서 제 육언이 “다 이루었다”(요 19:30, 3인칭 단수 완료 수동형)인데, 이는 ‘다 지불되었다’(It has been paid fully)는 뜻이다. “그는 본래 부요한 자로서 우리의 빚을 대신 지불하시기 위하여 가난한 자가 되신 것이다.” (고후 8:9) 예수님은 자신의 피 값으로 사망의 빚을 지불하셨다. 빚을 갚고 나면 빚 문서는 자동적으로 무효가 된다. 빚 문서란 곧 토지 문서이다. 골로새서에서 바울 사도는 그리스도의 구속사역을 설명하면서 죄인들을 판결하는 율법의 정죄 문서를 취급한다. “우리를 거스르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아 버림”이라고 하였을 때(골 2:14), 그 증서란 마귀가 소유한 채권 증서(빚 문서)이며 또한 토지 문서인 것이다. 같은 본문을 공동번역 성경은 이렇게 번역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가지 달갑지 않은 조항들이 들어있는 우리의 빚 문서를 무효화하시고 그것을 십자가에 못 박아 없애버리셨습니다. 그리고 십자가로 권세와 세력의 천신들을 사로잡아 그 무장을 해제시키시고 그들을 구경거리로 삼아 끌고 개선의 행진을 하셨습니다.” (골 2:14~15) 여기서 빚 문서란 하나님께서 에덴에 있던 아담에게 친히 하신 말씀, “동산 각종 나무의 실과는 네가 임의로 먹되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는 율법에 근거하여 마귀가 작성한 증서를 의미한다. 초림의 메시야는 십자가의 보혈로, 즉 피 값으로 사망의 빚을 갚아 주시고 그 증서를 도말하셨다. 재림의 메시야는 철저히 인봉된 토지매매 증서의 인봉을 떼고 여러 증인들 앞에서 소각시켜 버리는 작업을 통하여 토지 무르기 법을 최종적으로 완성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그 증서에서 일곱 인봉을 떼고 그 내용을 확인하고 난 후 그 빚 문서의 효력을 영원히 도말해 버리는 사역이 아직 그리스도에게 남아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재림 예수의 사역을 기록한 요한계시록에서는 일곱 인봉을 떼는 사건이 중심적인 주제이자 결론이 되고 있다. 인봉 떼는 일은 빚 문서를 ‘무효화’시킨 일차 작업을 확정짓는 일로서 기업 무를 자의 사역을 완성하기 위하여 결정적으로 중요한 절차이다. 사도 요한이 크게 울고 있는 장면이 나온다. 왜냐하면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의 오른손에 있는 일곱 인으로 봉한 책(토지 문서)을 펴서 보기에 합당한 자(인봉 뗄 자)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었다.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었다는 말이다. 오직 기업 무를 자만이 하나님 앞에서 당당히 그 증서의 인봉을 떼어내고 펴서 소각시킬 수 있는 자격이 부여되기 때문이다. “하늘 위에나 땅 위에나 땅 아래에 능히 책(두루마리로 된 토지 문서)을 펴거나 보거나 할 이가 없더라 이 책을 펴거나 보거나 하기에 합당한 자가 보이지 않기로 내가 크게 울었더니.” (계 5:3~4) 하나님의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가 나와서 보좌에 앉으신 이의 오른 손에서 책을 취하여 일곱 인봉을 떼려고 준비를 완료하였을 때 찬양이 울려 퍼진다.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만한 찬양으로 네 생물과 24장로들의 찬양(5:8~10), 천사들의 찬양(5:11~12),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의 찬양(5:13)이 울려 퍼진다. 토지 무르기의 완성자, 예수 그리스도 “바벨론아... 멀리서서 그 불붙는 연기를 보고 외쳐 가로되 이 큰 성과 같은 성이 어디 있느뇨... 하늘과 성도들과 사도들과 선지자들아, 그를 인하여 즐거워하라 하나님이 너희를 신원하시는 심판을 크게 하셨음이라.” (계 18:14~20) 아마겟돈 전쟁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최대의 전쟁이다. 이는 하나님이 신원하시는 심판의 전쟁으로, 이사야 61:2의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리라”는 말씀이 성취되는 사건이다. 은혜의 해와 신원의 날이 동시에 완성되는 순간이다. 심판 받는 바벨론 성에서 타오르는 불꽃과 연기는 두루마리로 된 빚 문서(토지 문서)의 인봉을 떼고 소각시킬 때 그 불똥이 사단의 왕국 바벨론으로 떨어지면서 심판의 불꽃으로 이어져 생겨난 것이리라. 아마겟돈 전쟁이 끝나고 거룩한 천사가 무저갱의 열쇠와 큰 사슬을 가지고 내려와 사단을 결박하고 무저갱에 던져 넣으면서 천년왕국이 시작된다. 곧 희년의 왕국인 것이다. 그리스도의 3대 직분과 희년법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게 하려 하심이라.” (눅 4:18~19) 메시야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로서, 선지자와 제사장과 왕이시다. 그리스도의 3대 직분은 3대 사역과 연결된다. 첫째 선지자의 직분과 그 사역(The Prophetic Office), 둘째 제사장의 직분과 그 사역(The Priestly Office), 셋째 왕의 직분과 그 사역(The Kingly Office)이다. 이 세 가지 사역은 희년이 선포되면서 동시적으로 연출되는 세 가지 사건과 완전히 일치한다. 그리스도의 사역 | 희년의 사건 | 선지자로서의 그리스도 | 노예 해방 (모세) | 제사장으로서의 그리스도 | 부채 탕감 (아론) | 왕으로서의 그리스도 | 토지 반환 (다윗) |
첫째, 선지자로서 이 땅에 오신 그리스도는 마귀의 노예가 된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체적인 방법을 우리에게 계시의 말씀으로 선포하셨다. 구약의 가장 위대한 선지자 모세는 선지자로 오실 그리스도의 그림자이며 모형이다. 모세는 출애굽을 통한 노예 해방의 사역을 성취한 상징적 존재이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 가운데 네 형제 중에서 나와 같은 선지자 하나를 너를 위하여 일으키시리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을지니라.” (신 18:15)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신 34:10 이하) 신약성경은 나사렛 예수의 정체를 ‘모세와 같은 선지자’라고 말한다. 베드로는 설교 중에 예수님에 대해 말하기를 “모세가 말하되... 나 같은 선지자 하나를...”(행3:22~23)이라 하였으며, 스데반도 그의 마지막 설교에서 같은 증언을 하고 있다(행 7:37). 특히 중요한 것은 변화산에서 예수님이 변형되셨을 때 하늘에서부터 들려온 음성이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저희 말을 들으라.” (막 9:7) 이는 신명기 18:15의 증거와 비슷하다. 또한 요한복음에는 오병이어의 표적을 경험한 사람들의 신앙고백이 나오는데, “이가 참으로 세상에 오신 그 선지자로다.” 여기서 그 선지자란 노예 해방을 성취한 모세와 같은 선지자를 말한다. 둘째, 제사장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의를 만족시키고 인간과 하나님이 화목할 수 있도록 자신을 대속적인 희생 제물로 드림으로써 제사장 직분의 사역을 오늘도 변함없이 수행하신다. 희년법에서 말하는 부채 탕감의 사역과 완전한 평행관계를 이룬다. 신약에서 죄를 사하는 일과 구약에서 빚을 탕감하는 일은 같은 성격과 특징을 갖고 있다. 예수께서는 대제사장으로서 하늘에 있는 참 장막의 지성소에 들어가 자기 자신의 피를 단번에 드림으로써 하나님과 죄인과의 관계, 즉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를 청산하고 화해시키는 사역을 완성하셨다. 그것은 곧 부채 탕감의 사역이었다. 세례요한에게서 세례를 받는 순간, 예수님은 속죄염소의 역할을 하시고 세례 요한은 전 인류를 위한 대제사장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한 것이다. 세례 요한은 여자가 낳은 자 중에 가장 큰 자이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는 순간에 죄인이 되셨다. 이는 의인으로서 죄인이 된 것이며, 마치 속죄일에 깨끗하고 흠 없는 염소가 대제사장의 안수를 받고 속죄염소가 된 것과 같은 성경적 원리다. 이로써 예수는 비로소 부채 탕감의 자격을 구비하게 되었다. 속죄양과 같이 대신 죄를 짊어짐으로 비로소 자격을 구비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예수께서 세례 받으심으로 인류의 모든 죄를 짊어진 메시야로서 등장하신 것이다. 이는 일종의 예수님의 메시아 취임식이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 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마 3:16-17) 가상칠언 중에 나오는 ‘다 이루었다’고 하신 선포는 탕감의 선포였다. 마귀에게 대한 지불행위이며, 공의의 하나님이신 여호와를 위한 지불행위였다. 이로써 우리의 생명과 땅을 되찾은 것이다. 할렐루야! 셋째, 왕으로 오신 그리스도는 세 가지 형식으로 왕의 직분을 수행하신다. (1)자기를 왕으로 영접하는 자를 자기의 자녀, 곧 자기 백성으로 삼으신다(요1:12). (2)자기 백성을 다스리시고 보호하시며 주권을 행사하신다. (3)우리의 대적 마귀를 정복하며 견제하신다. 구약에서 왕은 언제든지 ‘토지 반환’이라는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구원(salvation)이라는 단어는 주로 전쟁과 전투에서 승리하여 토지 공간을 확보하는 것을 의미하였다. 그러므로 공간적인 구원을 성취하는 일은 왕의 일차적인 사역으로 이해되었다. 이스라엘에서 왕은 자주 목자로 묘사된다. 양떼에게 푸른 초장이라는 땅을 확보하여 그들로 먹을 수 있도록 인도하는 목자의 모습은 메시아로 오실 분이 목자와 같은, 즉 왕과 같은 존재임을 예언하고 있다. 양떼가 풀을 뜯을 수 있는 토지의 확보는 목자의 가장 중요한 역할이다. “...내가 한 목자를 그들의 위에 세워 먹이게..” (겔34:22-23) 빌라도 앞에서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는 질문을 받았을 때 주님은 “내가 왕이니라!”고 대답하셨다. 5. 희년법과 3대 절기 유월절, 오순절, 초막절 이 절기들은 본래 농사력과 관련된 절기이다. 각 절기마다 농경적 의미를 어느 정도 함축하고 있다. 하지만 각 절기는 이스라엘의 어떤 위대한 역사적 사건에 대한 기념과 연결되어 있다. • 유월절: 애굽으로부터의 해방을 기념하는 절기 • 오순절: 시내산에서 율법이 주어진 사실을 기념하는 절기 • 초막절: 40년 광야생활과 이스라엘 민족의 형성과 더불어 장막을 칠 수 있는 공간을 확보 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 이러한 절기들은 당시 유대인의 생활에 있어서 조상들의 경험을 회상하고 재창조하는 의미를 갖고 있었다. 조상들의 경험은 구원의 경험이었다. 이스라엘 민족이 경험한 역사적인 구원사건을 의미한다. 구약의 3대 절기는 신약에서 복음이 말하는 구원의 3대 사건, 희년의 복음이 선포하는 구원의 3대 사건과 모형학적인 상관성을 갖는다. 그것들은 모두가 동일한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3대 절기와 희년법의 상관 도표 유월절 | 노예 해방 Deliverance | 오순절 | 부채 탕감 Redemption | 초막절 | 토지 반환 Salvation |
• 유월절과 노예 해방: 십자가의 보혈을 상징하는 유월절 어린 양의 피는 노예 문서에 기록된 이름을 빼내오는 능력이 된다.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롬 8:1~2) • 오순절과 부채 탕감: 십자가와 부활의 사건이 해방의 선포라면, 오순절의 성령강림 사건은 부채 탕감을 의미한다.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전혀 새로운 신분과 지위를 가지고 활동하는 것을 보게 된다. 노예에서 해방되고 새로운 신분을 획득하는 것이다. • 초막절과 토지 반환: 광야에서 40년 동안 장막을 치고 생활하던 시절을 기념하는 것인데, 이는 토지 반환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다. 신약에서는 이 초막절은 예수님이 세상 끝 날에 이 땅에 재림하셔서 구원 사역을 완성하고 모든 성도들과 함께 거하게 될 평화의 세계인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대하는 종말론적인 소망을 기념하는 것이다. 초막절은 토지 반환으로 확보한 조상의 기업인 안식의 땅에서 희년의 축복을 누린다는 의미이다. 그것은 장차 우리가 얻게 될 영원한 천국의 기업으로 들어가는 희망과 기대를 내포하고 있는 소망적인 절기이다. 궁극적으로 에덴동산을 회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안식일-안식년-희년 • 안식일: 사람뿐만 아니라 종과 가축들도 안식 • 안식년: 안식의 범위가 확대. 땅도 쉼, 곧 자연계까지 • 희년: 땅의 안식이 보장될 뿐만 아니라 노예로 묶였던 자들이 해방을 받아 각 사람이 조상의 토지 기업으로 돌아가서 누리는 사회적이며 구조적인 안식 계대 결혼법과 희년법 만일 형이 자식이 없이 죽으면 형수를 취하여 아들을 낳아줌으로 형의 기업과 혈통을 지켜나가야 한다는 시형제 결혼법, 곧 계대 결혼법은 조상의 혈통과 기업을 철저히 지켜나가려는 신앙에서 나온 이스라엘의 관습이었다. 이 풍습의 뿌리를 우리는 희년법 정신에서 찾을 수 있다. “너희는 각각 그 기업으로 돌아가며 각각 그 가족에게로 돌아가라”는 전통에서 기원한 것인데(레 25:10), 가족에게로 돌아간다는 것은 일차적으로 노예 해방과 부채 탕감으로 인한 자유의 회복이며 이산가족의 결합이지만, 그것은 동시에 가족의 혈통을 지킨다는 의미가 있다. 그러므로 희년법의 신앙이 이스라엘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표현된 제도가 계대 결혼법이었다. 이 제도는 조상의 기업(공간)과 혈통(시간)을 동시에 키우며 유지하려고 한다는 점에서 높이 평가 받아야 할 신앙의 형식이었다. 가족의 혈통을 지키려는 신앙은 메시아 대망사상과 연결되어 있다. 다말은 시아버지인 유다와 동침하였는데, 그녀의 행동은 자기 태에 아브라함의 씨를 담고야 말겠다는 신앙, 나의 대에서 메시야 혈통이 끊어지게 할 수는 없다는 신앙의 결단이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라고 한 유다의 말에서 다말의 행위는 그 정당성을 부여 받을 수 있었다. 위대한 신앙의 투사 다말은 예수의 족보에서 그 영광이 찬연히 빛나고 있다. 경계표 이동 금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얻게 하시는 땅 곧 네 기업된 소유의 땅에서 선인의 정한 네 이웃의 경계표를 이동하지 말지니라.” (신 19:14) 이스라엘 민족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제비 뽑아서 각 지파의 구별을 따라 토지 기업을 분배 받았다는 사실은 그 기업의 경계표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다는 신앙고백이다. 각 사람의 논공행상에 따라서 토지를 분배한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방적인 주권행사를 통하여 분배되었다는 거룩한 의미가 있다. 6. 기업 무를 자 예수 그리스도 기업이란 조상 대대로 물려 내려오는 재산과 사업을 일컫는다. ‘무르다’라는 말은 일반적으로 돈 주고 샀던 물건을 되돌려주고 돈을 되찾는 것을 뜻한다. 물건을 산 사람 쪽을 기준으로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희년법에서는 그 반대다. 가난하게 되어 할 수 없이 땅이나 몸을 팔았던 사람이 그 팔았던 것을 도로 찾기 위해 물건 값으로 받았던 돈을 샀던 사람에게 되돌려주고 물건을 되찾는 것을 말한다. 기업 무를 자의 역할 첫째, 친족의 형제가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가까운 친족 중에 한 사람이 미망인을 아내로 맞이하여 죽은 사람의 이름과 유산을 이을 아들을 낳아주는 경우다. 이것을 제도화한 것이 계대 결혼법이다. 둘째, 친족 중에 어떤 사람이 가난하게 되어 유산으로 물려받은 토지를 다른 사람에게 팔았을 때 가까운 친족 중에서 그 땅을 대신 사서 토지 소유권을 회복시켜 주는 경우다. 이것을 토지 무르기라고 한다. 셋째, 어떤 사람이 가난해져서 자신의 몸(노동력)을 팔아 누구의 종이 되었을 때 가까운 친족 중 한 사람이 그 주인에게 몸값을 대신 갚아주고 자유인이 되게 하는 일, 즉 속량시키는 경우다(레 25:47~55). 넷째, 친족 중에 누가 억울하게 살해되었을 때 가해자를 죽여 원수를 갚아주는 경우다(민 35:19~27). 이때 복수할 책임이 있는 사람은 기업 무를 자라 하지 않고 ‘피의 보수자’(blood avenger)라고 한다. 히브리어로 ‘고엘(goel)’은 기업 무를 자로, 친족을 위하여 몸과 땅을 되돌려 받게 하여 새로운 삶의 출발을 가능케 해주는 사람이다. 고엘은 구원자, 구속자로까지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기업 무를 자는 희년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희년을 앞당겨 실현시키는 사람이며, 희년을 ‘지금 여기서’ 선포하는 사람이다. 예수그리스도는 육체를 입고(근족)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의 몸값을 대신 갚아주셨다. 노예 해방을 선포하여 자유인이 되게 하셨다. 영생을 주심으로 기업을 회복시켜 주셨다. 세상을 이기시고 마귀의 영토를 정복하심으로 그 공간을 우리에게 회복시켜 주셨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위한 기업 무를 자로 오셨다. 또한 빚 문서를 무효화시키셨다(골 2:14~15). 기업 무를 자의 자격 첫째, 혈연적으로 가까운 근족이 되어야 한다. 둘째, 기쁨으로 자원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셋째, 친족이 상실한 기업을 되돌려 살 만한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있어야 한다(예: 보아스). 예수님은 이 세 가지 자격을 모두 갖추셨다. 인간이 되셨고, “스스로 버리노라”는 자원하는 마음으로 십자가를 지셨으며, 흠 없고 점 없는 어린양의 보배로운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다.
※ 2011년 3월 이스라엘 선교의 밤(3월 29일 온누리교회 한동대 홀) 특강 "희년법과 예슈아"(송만석 대표) 강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