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보는 것의 열쇠이다’: 랍비 제이슨 소블(Rabbi Jason Sobel)의 믿음과 희망 그리고 역경을 이겨냄에 관하여
잇사갈의 아들들은 시대를 분별하고 그들이 무엇을 할 지 알았다고 나옵니다. 우리도 때와 절기를 분별하여 이에 정렬되어야 합니다. 유대인의 달력에 따르면 우리는 지금 5780년대에 있습니다. 이는 히브리력으로 ‘페이’의 10년입니다. ‘페이’는 80을 나타내는 히브리글자입니다. 성경의 로마 숫자는 글자와 함께 수를 쓰는 방식이 아니기 때문에 80은 히브리어 ‘페이’로 쓰여 있으며 페이는 말 그대로 입을 뜻합니다. 따라서 지금은 ‘입’ 의 해 입니다. 또한 ‘페이’는 ‘돌파’를 의미하므로 지금은 성서력으로 돌파의 10년가운데 있습니다. 또 이러한 돌파의 의미를 가진 페이는 유월절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습니다.
출애굽기에서 악한 이름인 ‘바로’의 이름은 ‘페이’ 글자로 시작합니다. 또한 유월절과 구원(redemption)도 글자 ‘페이’로 시작합니다. 바로가 이스라엘을 핍박할수록 그들은 돌파하고 확장하였습니다. 돌파라는 뜻의 단어 ‘퍼랏’(parat) 역시 ‘페이’로 시작합니다. 모세는 80세에 하나님께서 부르셨는데 그는 자신이 말이 느리다고 말하며, 히브리어로 입을 뜻하는 ‘페이’ 에 문제가 있으니 형 아론을 보내시라고 말합니다. 모세의 나이 80세도 히브리어로 ‘페이’로 표기될 뿐만 아니라 또 하나님께서는 입을 뜻하는 ‘페이’를 사용하여 백성들을 출애굽 시키라고 명하십니다.
따라서 유월절과 관련된 모든 것이 글자 ‘페이’와 연결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지금의 시간은 ‘이집트에서 나오는 시기’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집트는 히브리어로 ‘미쯔라임’입니다. 이는 단어 ‘싸르(Sar)에서 온 것으로 이는 갇힘과 제한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집트는 단지 지리학적 위치가 아니라 영적이고 감정적인 상태를 뜻합니다. 우리의 잠재력과 부르심을 제한하는 장소이며 우리를 가두어서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통해 이루시기를 원하는 것에서 벗어나게 합니다. 지금은 돌파의 시기이며 갇힌 상자에서 나와야 할 때입니다. 그 상자를 사람이 우리에게 놓았든 원수가 놓았든, 혹은 우리자신이 스스로 놓은 것이든 간에 지금은 그 상자에서 나와 이 시기에 우리 삶에서 돌파를 이루어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유월절을 단지 과거에만 이루신 것이 아니라 현재에도 이루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히 변함이 없으십니다. 그분이 과거에 하신 일들은 그분께서 현재에도 이루시기를 원하는 ‘본보기’입니다.
우리가 맞이하고 있는 돌파의 10년은 열린 문의 해로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시고 계시고 이동이 이루어 지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삶에 가져오시기를 원하는 돌파는 요한복음 2장에서 가장 잘 설명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흘째 되던 날 갈릴리 가나에 혼례가 있어 예수의 어머니도 거기 계시고 예수와 그 제자들도 혼례에 청함을 받았더니 포도주가 떨어 진지라 예수의 어머니가 예수에게 이르되 저들에게 포도주가 없다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여자여 나와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내 때가 아직 이르지 아니하였나이다 그의 어머니가 하인들에게 이르되 너희에게 무슨 말씀을 하시든지 그대로 하라 하니라” (요2:1-5) 성경에 어떠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낭비하지 않으십니다. 요한복음 2장에 예수님께서 혼인식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첫 번째 기적을 이루신 것은 일주일 중 3번째 날입니다. 왜 하필 첫째 날도 넷째 날도 아닌 셋째 날일까요? 3일째날에 이 일을 하신 중요한 의미는 무엇이겠습니까? 3일은 배가의 축복의 날입니다. 창조 때 셋째 날은 하나님께서 유일하게 두 번 축복하신 날입니다. 창세기1장 10절과 12절에 하나님께서는 ‘좋았더라’라고 두 번 말씀하심으로 그 날을 두 번 축복하십니다. 따라서 그 날은 배가 축복(double bless)의 날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에서는 많은 곳에서 셋째 날에 결혼식이 열리며, 이것은 셋째 날에 결혼을 하여 더 열매 맺고 축복받기 위함입니다. 셋째 날은 또한 ‘계시의 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나오게 하시고 시내산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내가 셋째 날에 산 위로 강림할 것이니 백성들을 준비시키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영광과 능력을 시내산에서 바로 셋째 날에 나타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처음으로 행하신 기적은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따라서 이날은 계시의 날이며 예수님께서 그분이 누구이신지와 그분의 나라에 대한 계시를 나타내신 것입니다. 셋째 날은 또한 구속과 회복과 부활의 날입니다. 호세아 6장 1절에 ‘오라 우리가 주께 돌아가자 여호와께서 우리를 찢으셨으나 도로 낫게 하실 것이요 우리를 치셨으나 싸매어 주실 것 임이라 여호와께서 이틀 후에 우리를 살리시며 셋째 날에 우리를 일으키시리니 우리가 그의 앞에서 살리라’ (호6:1-2) 라고 말씀하십니다.
셋째 날은 회복의 날입니다. 그분께서 셋째 날에 행하신 것이 왜 중요할까요? 왜 예수님께서 첫 번째 기적을 결혼식에서 행하셨을까요? 이는 바로 메시아의 나라가 모든 것이 결혼식에서 시작하여 결혼식으로 종결되기 때문입니다. 그때에는 그분의 나라에서 그분과 얼굴을 맞대고 어린양의 결혼식 저녁식사를 기념하게 될 것입니다. 그 분은 우리가 타락함으로 잃어버린 것들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그분이 셋째 날에 기적을 행하심은 궁극적으로 앞으로 일어날 그분의 3일째 부활하심을 미리 보여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족한 삶을 사는 것이 아니라 넘치는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리고 넘침의 삶을 사는 첫 번째 열쇠는 ‘믿음’과 ‘주님을 신뢰함’ 입니다. 잠시 생각해 봅시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나아가 무언가 해주시기를 부탁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나의 시간이 아직 되지 않았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에 마리아가 어떻게 반응했나요? 그분이 뭐라고 하시든지 하라고 하인들에게 말합니다. 그녀는 믿음 가운데 예수님께서 처음에 관여하지 않으실지라도 나중에는 응답하실 것을 기대하였습니다. 믿음은 하늘의 마음을 움직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응답하셨습니다.
저는 셋째 날이 창조 때와 연결되어 있음을 말씀 드렸습니다. 돌파하는 믿음에는 두 단계의 믿음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저는 이것을 ‘눈의 믿음’, ‘귀의 믿음’이라고 부르겠습니다. 먼저 ‘눈의 믿음’은 ‘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 라는 표현이 있듯 깊은 믿음의 단계는 아닙니다. 더 깊은 믿음의 단계는 ‘입의 믿음’입니다.
창조 때를 기억해 보십시오. 세상은 형태도 없고 공허했으며 어둠과 혼돈의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 말씀하셨고 빛이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말씀하시고 그 다음에 그것을 보셨습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어둠의 때 조차도 하나님을 믿고 없는 것을 있는 것과 같이 구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고 생각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그 반대입니다. 믿음은 보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믿지 않는 다면 결코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 여러분은 볼 수 있는 것 만큼만 될 수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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