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릇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 (스가랴 2: 8b) 하나님은 선지자 스가랴를 통해서 이스라엘은 나의 눈동자라고 하신다. 눈동자는 눈의 한 가운데에 있는 검게 보이는 부분이다. 그리로 빛이 들어가고 사물을 보고 인식한다. 눈동자는 몸의 어떤 부분 보다 귀중히 여겨 보호하며 철저히 지키기 때문에 눈동자처럼 지킨다는 표현을 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귀하게 여기시고 철저히 지키신다는 뜻이 들어 있다. 그런데, 사람의 눈은 그 눈동자를 통해서 세상을 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눈동자 이스라엘을 통해서 세상을 보신다고 얘기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마음속의 생각을 드러내는 통로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눈동자 이스라엘에 대해 이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해 보려고 한다. 하나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세상을 보신다.’ 는 것과 또 하나는 ‘이스라엘을 보면 하나님의 마음을 엿보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통해 세상을 어떻게 보시는가? 어떤 사물을 관찰해 보려고 할 때 눈동자를 통해서 본다. 그렇게 볼 때 세상을 보시려는 하나님 앞에는 늘 이스라엘이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옛날 아브라함과 항상 함께 하셨고 또한 이삭과 야곱의 하나님이라고도 하셨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이 예루살렘을 떠나 온 지면에 흩어져 살 때에도 항상 함께 하셨다. 북방과 흩어져 살던 모든 지역에서 돌아오고 있는 지금도 그들과 늘 함께 돌아오고 계신다. A.D. 70년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이스라엘이 열방으로 흩어졌을 때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크게 잘못된 부분이다. 이스라엘이 눈동자라고 하는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을 보시되 항상 이스라엘과 관련해서 보신다는 뜻이다. 다른 표현으로 하면 열방이 아브라함과 그 후손을 어떻게 대하나 지켜보고 계신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브라함을 축복하는 자를 축복하시고 저주하는 자를 저주한다고 약속하신 것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가 있는 곳마다 하나님께서 보고 계시며 복과 저주를 주고 계신다. 또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는 율법을 주셨고 복과 저주를 그 앞에 두셨다. 하나님을 사랑하여 율법을 즐거워하고 지키는 자에게는 복을 주시고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율법을 떠나서 살 때에는 저주를 주셨다. 이스라엘을 통해 보시는 하나님은 이방 모든 백성들이 이스라엘을 보고 그대로 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눈동자 이스라엘을 기준으로 보시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에 열방을 모아놓고 양과 염소를 구분하실 때에 주님은 이스라엘을 통해서 구분하실 것이다. 그 기준은 오직 한가지 눈동자로 보시기 때문이다. 눈을 마음의 창이라고 한다. 눈은 그 사람의 마음 상태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위해서는 눈동자 이스라엘을 보면 엿볼 수 있다. 이스라엘을 통해 약속하셨던 메시아를 보내셨고 온 세상이 구원 받을 길을 여셨으며 그 축복이 이스라엘이 흩어져 살고 있는 모든 땅 끝까지 이르게 하셨다. 또한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셨던 그 땅에 후손들이 돌아와 나라를 세우고 계속 회복하고 있다.이사야, 예레미야, 에스겔 같은 선지자들이 진즉 예언했던 일들이 지금 이스라엘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일 점 일 획도 변함이 없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는 것이 바로 눈동자 이스라엘이다. 이스라엘에게 약속하신 것을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그 눈동자를 들여다 보면서 그 마음을 조금 더 깨닫게 된다.
지난 2천년 동안 이스라엘이 집을 떠나 땅 끝까지 흩어져 살 때 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핍박을 받아온 것을 교회사를 통해 우리는 알고 있다. 만신창이가 되어 주님 손에 이끌리어 지금 돌아오고 있는 이스라엘을 바라보며 주님 앞에 엎드려 진심으로 회개하고 이스라엘 앞에 나가 용서를 구하여야 할 때이다. 그동안 눈동자 이스라엘을 무참히도 짓밟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