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지사항

제목송만석 장로님 토라 예슈아 니짜빔, 신29:10-30:20, 바엘렉 가서 신31:1-30 네티비야, 유다 바카나2023-10-06 22:30
작성자 Level 10

‘초막절에 4가지 종류의 가지를 흔드는 이유’

‘니짜빔’은 ‘똑바로 서다’ 라는 뜻으로 지난 토라포션의 무서운 저주가 언급된 이후 나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이스라엘이 구원 받을 수 있습니까? 우리의 희망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에 대한 모세의 대답은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가 끔찍한 고난을 받은 후에라도 너희는 견딜 것이다. 너희가 넘어질지라도 결국은 일어설 것이다’


번영의 때에 우리는 우상을 섬기기 시작하며 하나님의 토라를 버렸습니다. 따라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돌아가서 우리의 정체성을 굳게 지킬 때는, 바로 우리가 어렵고 위험할 때입니다.  

이러한 끔찍한 일들은 우리고 더 겸손하게 하고 우리를 테스트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둠에 둘러싸여 있을 때 우리가 홀로 큰 고난 중에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 순간 형을 피해 도주하던 우리 조상 야곱에게 나타나셨던 것처럼 그분을 우리에게 나타내십니다. 

‘여호와는 마음이 상한 자를 가까이 하시고 충심으로 통회하는 자를 구원하시는도다’

(시34:18) 

‘야곱이 잠이 깨어 이르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창28:16)

여기서 행간의 뜻을 알 수 있는데 야곱은 아마 하나님께서 어둠가운데 계신 것에 놀랐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삶이 가장 힘들고, 가장 어두운 순간에 분명한 방식으로 그분을 나타내십니다. 우리가 지쳐서 더 이상 나아갈 수 없는 가장 어두운 순간, 하나님께서는 그 곳에 나타나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다시 일어서도록 힘을 주십니다. 


한편 다음의 미드라쉬에서는 우리 모두가 하나로 연합될 때 구원이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여러 개의 막대기를 뭉치면 한번에 이것을 부러뜨릴 수 있겠느냐….그러므로 이스라엘은 그들이 연합하지 않는 한 구원받지 못할 것이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 날 그 때에 이스라엘 자손이 돌아오며 유다 자손도 함께 돌아오되’ (렘50:4) 말씀에 나와 있듯 그들이 연합할 때 거룩한 임재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미드라쉬 Tanchuma, 니짜빔)‘


모든 사람 안에는 빛이 있습니다. 

어떤 이들에게 이 빛은 더 강하고 밝지만 어떤 이에게 이 빛은 좀더 작고 약합니다. 그러나 연합된 힘으로 우리는 주변을 밝히고 어둠을 물리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연합의 중요성은 성경의 절기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수콧 즉 장막절을 포함한 대절기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 절기에 우리 아이들은 4가지 종류의 가지를 잡고 흔듭니다. 

대추야자나무, 도금양나무, 버드나무, 씨트론 가지를 흔듭니다. 


이 4가지 종류의 나무는 맛과 냄새에 따라 분류되고 이것은 4가지 다른 종류의 사람들을 나타냅니다. 

씨트론 나무는 맛도 냄새도 좋습니다. 씨트론은 믿음과 토라의 지식도 있고 좋은 행위도 있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대추야자나무는 좋은 맛을 내는 야자열매가 있지만 향은 없습니다. 따라서 믿음과 토라지식은 있지만 좋은 행위가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도금양 나무는 좋은 냄새는 나지만 맛은 없기 때문에 믿음과 토라의 지식 없이 선하게 행동하는 선한 사람들을 뜻합니다. 

버드나무는 맛도 냄새도 없는데 이는 토라도 좋은 행위도 없는 사람을 뜻합니다. 


장막절에 우리는 이 네 종류의 나무를 손에 들고 아이들에게 씨트론나무 즉 믿음과 선한 행위가 있는 모든 것을 갖춘 사람만을 원해서는 안되며 하나님의 규례는 대추 야자나무 하나만으로는 성취될 수 없음을 가르칩니다. 우리는 맛도 냄새도 없는 버드나무도 필요한 것입니다. 버드나무, 도금양 나무, 씨트론 나무를 함께 쥘 때, 미드라쉬의 말씀처럼 연합이 있을 때에만 장막절의 명령을 완수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믿는 유대인에게도 마찬가지 입니다. 

믿는 자로서 교회는 기도와 교제의 집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될 때 그 어떤 것도 우리를 넘어뜨릴 수 없습니다. 

이 하나됨을 표현하는 한가지는 서로 돕는 것이며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고 용기를 북돋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넘어질 수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교회는 우리가 다시 일어서도록 돕습니다. 교회에는 4가지 식물과 같이 4 종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가 더 사랑하는 사람도 있고 조금 덜 사랑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믿음과 기도의 사람이 있고 활동적이고 도움을 주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으로 인해 거룩하고 순결해진 하나님의 소유인 믿음의 공동체의 일원입니다. 


이번 토라 포션은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언약을 맺는 것으로 마쳐집니다. 그 언약을 시작으로 지금까지 이스라엘과 또 이스라엘과 함께하는 모든 이들은 하나님 앞에 서 있으며 그 분 앞에서 동등한 사람들입니다. 지파의 리더들은 물을 긷는 사람들 옆에 섰습니다. 오늘날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이 언약 안에 서있습니다.

 ‘내가 이 언약과 맹세를 너희에게만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늘 여기 서있는 자와 오늘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한 자에게 까지이니’ (신29:14-15)


일반적으로 이번 토라포션은 선과 악을 지속적으로 선택해야 하는 자유의지를 다룹니다. 우리가 선을 택할 때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지혜를 발견할 수 있는 보물과 같으며 우리에게서 멀리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이 명령은 네게 어려운 것도 아니요 먼 것도 아니라… 오직 그 말씀이 네게 매우 가까워서 네 입에 있으며 네 마음에 있은즉 네가 이를 행할 수 있느니라’ (신30:11-14) 

이 말씀은 하시딕 유대인의 이야기를 생각나게 합니다. 


한 가난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먼 나라의 다리 밑에 숨겨진 보물에 대해 꿈을 꿉니다. 

그래서그는 그 다리와 그 아래 숨겨진 보물을 찾아 수백 킬로미터의 여행을 떠납니다. 길고 힘든 여정 끝에 다리를 드디어 발견하게 되고 다가가 다리를 살펴봅니다. 

그는 다리에 너무나 집중한 나머지 아무것도 보지 못합니다. 그런데 갑자기 한 낯선 이가 다가와 그가 어디서 왔는지 묻고 자신의 꿈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이 낯선 이가 꾼 꿈은, 보물을 찾아 먼 길을 온 한 가난한 사람과 같은 이름을 가졌고 같은 주소를 가진 사람의 집의 부엌 바닥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계시의 꿈이었습니다. 


그 꿈 이야기를 들은 남자는 자신이 꿈에 나온 그 사람임을 깨닫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 자신의 부엌 밑에서 보물울 발견합니다. 이 유명한 하시딕 이야기는 토라를 공부하기 위해서, 혹은 영적인 스승이나 멘토를 찾고자 하는 사람들은 멀리까지 여행을 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뜻합니다. 

보물은 이미 우리 안에 있으며 하나님과 우리의 연결은 개인적이며 직접적인 것입니다. 우리는 스승에 의해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보물은 바로 여기, 우리가 가진 성경 속에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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