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서는 해 주시지만 벌은 내리신다’ ‘믿음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 위한 입문 과정이다’
이번 토라포션은 정탐꾼들의 죄를 다루고 있습니다. 그들은 벌로 전 세대가 죽을 때까지 40년간을 광야에서 방황하게 됩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내가 네 말대로 사하노라’(민14:20) 모세의 중보로 이스라엘 백성은 용서함을 받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하나님께서는 용서를 해주시지만 그 죄에 대한 벌은 내리신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저 ‘예수님이 내 죄를 용서해 주셨어’ 라고만 해서는 안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죄를 진실로 용서하십니다. 그러나 그 후엔 같은 죄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대신 삶을 변화시킬 것을 우리에게 요구하십니다. 그렇다면 정탐꾼들을 보내는 제안을 누가 먼저 하였을까요. ‘너희가 다 내 앞으로 나와와 말하기를 우리가 사람을 우리보다 먼저 보내어 우리를 위하여 그 땅을 정탐하고 어느 길로 올라가야 할 것과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우리에게 알리게 하자 하기에’ (신1:22) 우리는 신명기 말씀을 통해 리더들을 중심으로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새우기 위해 먼저 정탐꾼들을 보내기 원하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는 반복되는 백성들의 요구에 이 문제를 하나님께 가지고 나아갔고, 하나님께서는 이를 허락하셨습니다. 이러한 요구의 근본적인 원인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한 믿음의 부족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었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직접 그 땅을 보고 싶었고, 결론적으로 그 땅을 악평하여 백성들을 두려움에 떨게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의 실패에 대해 신약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또 하나님이 누구에게 맹세하사 그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셨느냐 곧 순종하지 아니하던자들에게가 아니야. 이로 보건대 그들이 믿지 아니하므로 능히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 (히3:13-19 신약성경은 광야세대는 그들의 믿음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명확하게 말씀합니다. 한편 우리는 말씀의 다른 부분은 무시한 채 한 구절만을 기반으로 믿음을 가져서는 안됩니다.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만 하나님의 눈에 의롭게 여김을 받는다’ 라는 신학은 1520년에 마틴 루터에 의해 기독교에 들어왔습니다. 이 신학은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는 하박국 2장 4절말씀에 기초한 것으로 바울의 로마서 서신의 시작부분(1장)에도 이 구절이 인용되었습니다. 이 구절을 근간으로 루터는 우리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 이후로 기독교는 지금까지 믿음과 행위 사이의 신학적 논쟁이 있어왔습니다. 그러나 하박국에 나온 이 말씀의 의미는 루터의 주장과는 관련이 없는 내용입니다. 이는 하박국의 질문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이 바벨론 사람들보다 더 의롭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 것이라는 하나님의 응답으로 인용된 것입니다. 또한 유대 경전에서는 이를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 ‘믿음’이 지켜야 할 유일한 계명이 되더라도 그 사람은 여전히 이스라엘 사람이고 이 믿음으로 인해 그는 살게 될 것이며 후에 613개의 나머지 규례를 지키려고 나아올 것이다’ (탈무드)
이는 루터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이 말씀은 믿음이 계명을 지키는 삶과 선한 행위를 위한 입문(기초) 단계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번 토라포션의 하프타라 부분 여호수아 2장에서 여호수아가 보낸 정탐꾼 2명은 여리고 성에서 기생 라합에 의해 도움을 받아 생명을 건집니다. 신약말씀은 이에 대해 믿음 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으며 그에 따르는 행동(행위) 또한 중요함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약 2:24-26) ‘이 술은 너희가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를 방종하게 하는 자신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따라 음행하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민15:39)
토라와 신약성경은 우리에게 늘 기억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 약속 그리고 구원 또한 예수님의 행하신 일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러한 ‘기억함’의 목적은 ‘행함’으로 발전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어떠한 삶을 사느냐에 의해 드러나며 예수님의 빛은 우리를 통해 비춰지게 됩니다. 예수님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이기적인 중심에서 벗어나 예수님을 그 중심에 모시도록 만듭니다. 이렇게 함으로 내 중심이 나에게만 집중하는 것에서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을 위한 공간을 마련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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